신라 천년의 숨결을 느끼며 짧은 산행 - 경주남산 금오봉
* 산행지: 경주 남산 금오봉(468m)
* 산행일:
* 산행경로 및 시간: 서남산 삼릉주차장(
신라 천 년의 불교 성지이고 노천박물관이라고 하는 경주 남산을 다시 찾는다. 수려한 산세와 걷기 좋은 비단길 같은 등로, 곳곳에 산재한 긴 여운의 유적지들 모두가 마음에 들어 다시 오고 싶었던 곳인데 회사 행사로 경주에 왔다가 잠시 시간을 낸 것.
작년에는 금오봉과 고위봉을 거쳐 천룡사지 방향으로 하산했었는데 오늘은 시간이 부족, 금오봉까지만 다녀 오기로 한다. 신라인들은 남산을 성지로 여기고 미래에 올 부처님을 위해 수많은 불상과 탑을 조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경주 남산은 산 전체가 유적지요 박물관. 가장 유적이 많은 삼릉골을 따라 오르는 길은 이런 신라인의 숨결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 이른 아침 천 년전 신라인들의 꿈을 생각하며 행복한 발길을 딛는다.
서남산 주차장에 주차하고 산행 출발. 들머리에서 소나무 숲을 따라 오르면 곧 배리 삼릉이 나타난다. 삼릉 주변의 소나무 숲 정취가 그윽하다. 삼릉은 신라 박씨 계의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을 모신 능인데 후대에 추정한 것이고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나라가 망하고 오랜 기간 방치되었을 테니 그 기록이 정확히 남았을 리 없을 거고 후대에 추정하느라 애를 먹었을 것. 조선시대 경주 박씨 후손 한 사람이 경주에 부임해 김씨들과 협상 배리 삼릉을 박씨 무덤으로 정했다고 한다. 사라진 왕조의 서글픔이 어찌 이곳에서만의 일일까?
삼릉을 지나 잘 조림된 우거진 송림 사이를 오르면 바위길이 시작되고 머리 부분이 없는 석조여래좌상이 보인다. 1964년 동국대 학생들이 땅속에서 발견했다고 하는데 이 아름다운 불상의 머리 부분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라 천년의 성지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잊혀졌을 테고 관리부실에 이조시대 불상 파괴까지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성보와 예술품들이 사라졌을까.
이른 아침인데도 날이 덥다. 주변 불상들을 둘러 보고 싶은데 오늘은 시간이 너무 없다. 계곡 옆 완만한 길은 조금씩 경사가 있는 길로 변하고, 나무 계단을 오르니 작은 암자인 상선암. 암자 뒤로는 주 능선인 상사바위 바위지대가 그림같이 아름답고 건너 편 산줄기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빛난다. 남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인데도 산줄기가 수려하고 소나무 숲이 절경을 이뤄 이 곳에서 보는 전망은 정말 일품이다. 암자에 있는 미적지근한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상선암>
<상선암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
<상사바위>
경사가 급한 길을 잠시 오르니 이정표(금오봉 930m, 삼릉 1,390m)가 있고 그 위에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마애불상은 자연 암반을 파 내어 조성했는데 특이하게도 머리 부분은 입체적으로 아래는 선으로 조각한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 이른 아침 진지한 합장으로 부처님 앞에 있는 사람의 기원은 무엇일까?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한 그 기원은 끝이 없을 거고, 오늘 아침의 내 상념도 마찬가지이리라. 덩달아 잠시 합장 배례하고 로프가 매인 급한 길을 따라 능선으로 오른다.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능선 안부에 도착해 이정표를 따라 우측 정상 방향으로 가다 전망 바위에 올라 후련한 조망을 잠시 즐기고 다시 출발. 119 표지판을 '신라인의 미소'라고 하는 신라 와당 모양으로 만들었다. 역시 천년 고도다운 발상. 이제부터는 걷기 기분 좋은 부드러운 능선 길. 울창한 수림의 호젓한 산길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김시습 금오신화의 금오봉 정상은 지척이다.
<안부 이정표 - 정상은 우측으로>
<정상으로 향하는 기분 좋은 길>
<금오봉 정상>
<정상까지 산행을 같이 한 동지들>
<상선암으로 내려가는 급경사길>
넓은 공터인 금오봉 정상은 햇볕이 벌써 뜨겁게 내려쬐고 주변 조망이 되지 않아 오히려 답답한 곳. 일행들을 기다리면서 잠시 쉬는데 두 명이 사라지고 6명만 올라왔다.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 오르는 즐거움까지 낮을까! 모두들 기분 좋은 환한 얼굴이 좋다. 나중 보니 두 분은 상선암에서 기도하기 위해 정상에 못 올라왔고(정말 기도가 더 중요하다), 일에는 적극적이지만 산이라면 항상 빼는 함 선수는 '산 정상에 처음 올라온 것 아니냐'는 질문에 '소시쩍에 여자친구들 동행해서 슬리퍼 신고 설악산 대청봉에 오른 적이 있다'고 큰 소리... 이럴 때는 <난 어릴 때 우리 집에 금송아지 두 마리나 있었다!!!>
한참 정상을 즐기다 하산. 능선 안부의 급경사 길을 내려와 다시 상선암을 지나고, 흘린 땀을 계류에 흐르는 시원한 물로 씻어 낸다. 오늘 아침 수 없이 떠오르는 상념들도 같이 씻어내 볼까? 삼릉 앞 소나무 숲에서 잠시 머물다 주차장으로 돌아가 짧은 산행 완료. 아름다운 산세와 편한 산행 길이 좋아 어느 가을날 다시 오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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