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기록/섬 산행

환상과 동화 속의 눈꽃 축제 - 한라산

카페인1112 2003. 12. 31. 21:00

환상과 눈꽃 축제 한라산

 

* 산행기: 한라산(1,950m)

* 산행일: 2003 12 22

* 산행경로: 성판악(07:50)~사라악대피소(09:00~09:10)~진달래밭대피소(9:40~50)~한라산 정상(10:50~11:23)~진달래밭대비소(11:58~12:20, 중식 출발)~성판악(14:00)

* 산행시간 거리:  6시간 10(휴식 중식 1시간 10 포함), 산행거리 19.2Km

 

겨울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내면과 성찰의 계절. 앙상한 가지에 차갑게 울리는 바람소리의 쓸쓸함과 허무는 스스로를 한번 더 돌아 보게 된다. 일상의 일탈을 꿈꾸는 것인가? 그래서 이 겨울 눈 덮인 한라산을 보고 마음껏 느끼고 싶었다. 차가운 겨울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그 숲에서 잃어 버린 나 자신을 찾는 몸부림으로, 그리고 잃어버린 자신감을 찾고 싶다는 바람으로.

 

 언제나 신비롭게 느껴지는 한라산과 백록담, 아침 일찍 성판악으로 향하는 길에 멀리 보이는 한라산 정상은 그 엄정한 자태를 여명 속에 살포시 드러내고 있다. 오늘 저 한라산의 여신은 그 수려한 자태를 과연 보여 줄 것인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6시40 콘도를 출발하여 주변에 눈이 잔뜩 쌓이고 빙판길인 5.16도로를 거쳐 7시40 해발 750m의 성판악에 도착.

 

원래 계획은 탐라계곡의 수려한 계곡미와 왕관릉 주변의 환상적인 눈꽃터널이 일품인 관음사 코스로 올라 평탄한 성판악 코스로 하산하는 것. 그러나 시간 계획이 맞지 않아 그냥 성판악에서 올라 원점 회귀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그래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 불안감으로 오늘 산행은 엄청 서둘러야 한다. 일행은 3, 후배 7명은 우리보다 조금 늦게 별도로 산행을 한다.

 

성판악에서 8 거의 다되어 준비를 마치고 산행 시작, 이른 아침이라 아직 차가운 날씨지만 출발부터 눈꽃 세상이 어우러지고 새하얀 눈길이 유혹한다. 온 세상이 눈천지다. 등산로만 러셀이 되어 있을 뿐 양 옆에는 무릎 높이로 눈이 쌓여 있다. 새하얀 바탕 위에 푸르게 솟아 있는 산죽, 그리고 푸른 색의 넓은 잎을 축 늘어 트리고 있는 굴거리나무들만 푸르름을 유지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6분 정도 지나니 첫 번째 안내 표지판, 성판악에서 600m진행했고 진달래산장까지 6.7Km, 진달래산장에서 백록담까지는 2.3Km의 거리, 오늘 산행은 왕복 19.2Km의 제법 긴 거리다.

 

갑자기 눈 덮인 환상의 설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하늘 높이 �빽하게 솟은 삼나무 숲, 새하얀 눈꽃이 푸른 가지 위에 소담스럽게 덮여 있다. 겨울 햇살에 반짝이는 눈꽃의 풍경에 넋을 잃고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온몸으로 물결친다. 상상 속의 눈꽃 궁전, 동화 속에서 꿈 꾸던 요정이 사는 세계, 반짝이는 은색의 세계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설화와 빙화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삼나무 숲을 지나자 좌측으로 눈 쌓인 한라산 정상이 신비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9 사라악대피소에 도착. 대피소를 지나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제법 경사가 급한 길이 이어지고 너무 서둔 발걸음이어서일까 숨이 가쁘다. 옷 벗은 앙상한 활엽수림 사이로 푸른 구상나무들이 싱싱함을 발하고 바닥에는 여전히 산죽들이 싱그럽다. 1400고지를 지나자 고운 푸른 하늘이 눈에 가득 차고 푸근한 날씨여서인지 숲에서 부는 바람이 차라리 시원하다.

 

키 작은 관목들이 자라 시야가 탁 트이면서 저쪽 멀리 눈으로 온통 뒤덮인 구상나무 숲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진달래밭 대피소. 진달래밭 대피소는 몇 년 전 산행을 했을 때 출입통제로 정상에 가지 못하고 이곳 대피소까지만 왔던 경험이 있는 곳. 대피소에서 커피 한잔을 하며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정상을 향해 출발. 이제 정상까지는 2.3Km가 남았다.

 

1500고지를 지나자 곧 구상나무 숲, 이제는 나무 터널 비경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갑자기 그 눈밭 속으로 달려가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1880m고지에서 잠시 휴식, 이제는 구름이 아래로 보이고 멀리 제주 시가지와 한라산 오름들이 시야에 꽉 찬다. 이제부터는 급경사 나무 계단길. 주변에는 용암이 분출하면서 생긴 바위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시든 풀들만 이따금 보이는 황량한 풍경이다.

 

1050,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 만에 그렇게 고대했던 동릉 정상에 도착했다. 날씨가 맑아 눈 덮인 백록담이 선명하게 보이고 주변 조망이 시원하다. 신비롭게 느껴지는 분화구 주변에는 관목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백록담에는 흰 눈이 잔뜩 덮여 있다. 발 아래 두터운 구름이 신비롭게 펼쳐져 있고 그 아래에는 구상나무 숲들이 하얗게 파랗게 빛나고, 주변에는 눈꽃 세상이 망망대해 구름을 배경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정상에서 같이 식사를 하자는 메시지, 그러나 30분을 기다려도 올라오는 기척이 없다. 차가운 바람에 도저히 더 버틸 자신이 없어 같이 식사하는 것을 포기하고 일단 하산하기로 결정 11시23 하산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눈으로 뒤덮인 구상나무 숲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다시 진달래밭대피소에 도착 컵라면에 점심을 먹는다. 음식을 얻어 먹으려는 까마귀들이 20여 마리나 주변에 앉아 우릴 지켜 보고 있다. 먹다 남은 김밥을 던져 주니 잽싸게 물고 사라진다. 20분 정도 지난 후 다시 산행 시작. 12시 40 사라악대피소, 여전히 까마귀 소리가 계속 산속을 울리고 있다. 올라올 때 그 신비롭게 빛나던 눈의 궁전 삼나무 숲은 포근한 날씨 탓일까 눈들이 녹아내려 비가 내리는 것처럼 물방울 소리가 숲을 울린다. 그 신비롭던 환상의 세계는 꿈이었을까?

 

고요한 숲. 이따금 울리는 물방울 소리와 거친 까마귀 울음소리가 숲의 고요한 침묵을 깨고 있다. 하산하는 도중 몇 사람을 만났을 뿐 산행 내내 마주치는 사람이 거의 없이 혼자만의 세계를 즐길 수 있었다. 제법 피곤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머리 속에 수 없는 상념들이 스친다. 이제는 성판악이 멀지 않았다. 오후 2, 꿈결 같은 6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이제는 일상의 세계로 복귀한다.

 

한라산에서의 하루, 꿈을 꾸듯 행복한 세계였다. 이제 다시 나태함과 나약함으로 돌아갈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이 아름다움에 빠져 평생의 감동으로 남을 뿌듯한 행복함을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