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라산(1,950m) - 겨울의 끝자락에서 한라산의 절경을 즐기다
* 산행일:
* 산행경로 및 시간: 성판악(6:40)~사라악대피소(7:35)~진달래밭대피소(8:38~8:30)~동릉정상
(9:50~10:10)~왕관릉헬기장~삼각봉대피소(11:05)~탐라계곡(12:00)~관음사(12:58)
- 총 산행시간: 6시간 18분
* 산행거리: 성판악~진달래밭대피소(7.3km)~동릉정상(2.3km)~관음사(8.7km), 총 25.6km
제주행사 둘째 날, 공식적인 일정을 접어두고 한라산으로 출발. 남들 다 하는 공을 못 치니 덕분에 한라산으로 갈 수 있는 것. 가까운 누구는 나보고 한심하다고 했지만 내가 즐거운 일을 하는 게 상책. 제주에서 산행의 추억만큼 즐거웠던 일도 별로 없었으니 지금 이 시간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된다. 이른 새벽, 숙소인 그랜드호텔에서 산행 들머리인 성판악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는데 택시 기사가 ‘요금을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난감해 한다. 이른 시간이라 택시 잡기도 만만치 않고 결국 2만원에 낙찰. 서귀포 방향으로 5.16도로를 30분 정도 달리니 들머리인 성판악(750m)이다.
성판악은 그동안 여러 번 와 이제는 익숙한 곳.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동화 속 눈꽃나라의 설경이 너무 아름다워 그 기억만으로도 오랫동안 행복했다. 매점에서 어묵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때우고 아직 어둠에 잠겨 있는 한라산으로 들어선다. 오늘은 성판악에서 동능 정상에 올라 관음사지구로 하산할 계획. 정상까지 9.6km, 정상에서 관음사지구까지 8.7km이니 총 25.6km의 거리. 오늘은 홀로 가는 호젓한 산행이니 한라산의 정기를 마음껏 느끼고, 즐기며 가는 거다.
<성판악 들머리를 들어서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고 간신히 사위를 분간할 수 있는 정도이고 길은 완만하지만 걷기 불편한 돌길. 그래도 이른 아침의 신선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기분 좋은 발걸음이다. 울창한 활엽수림은 아직 한 겨울이라 앙상한 가지들만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혀를 쭉 빼문 듯한 굴거리나무는 여전히 기괴한 모습이다. 출발한 지 40분 정도 지나니 고도 1000m 지점, 등로에 조금씩 눈이 보인다. 오늘 심설산행의 예고편.
<사라악대피소, 뒤로 오름이 보인다>
근처에 봉긋한 오름이 있는 사라악대피소를 지나니 샘터, 그리곤 이제부터 두텁게 쌓인 눈길 산행이다. 지금까지 완만했던 길은 조금씩 경사가 급해지고 눈길이 미끄러워 아이젠을 착용한다. 해발 1,300m 고지를 지나면서 주변에는 푸른 구상나무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가파른 길을 오르니 다시 시야가 트이면서 진달래밭대피소가 모습을 드러낸다. 매점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잠시 휴식. 시간이 일러서일까 매번 올 때마다 붐비던 대피소는 한적한 모습.
<진달래밭대피소>
눈길을 한참 걸어올라 해발 1,700m 표시가 있는 구상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하늘이 열리면서 긴 계단 길이 나온다. 그 위로는 동릉 아래 사면의 황량한 풍광. 이곳은 햇볕이 잘 들어서일까 눈이 다 녹았다. 오늘은 날이 맑아 발 아래 제주 중산간 마을과 멀리 서귀포 시내까지 뚜렷하게 펼쳐진다. 여유 있게 계단에서 조망을 즐기면서 휴식. 이제 해발고도 1,800m이니 정상까지는 150m만 오르면 된다. 하지만 동릉 정상까지는 가파른 길.
<해발고도 1,500m 지점>
정상으로 향하는 가파른 나무 계단 길을 15분 정도 오르니 한라산 정상, 아니 동릉 정상이다. 실제로는 동릉보다 건너편 서릉이 15m 정도 높으나 지금은 출입금지로 갈 수 없는 곳. 이곳에 그렇게 여러 번 왔었지만 매번 날씨가 흐려 백록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는데 오늘은 한라의 여신이 살짝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기대했던 대로……
둘레가 1Km가 넘는다는 정상부 능선 아래 얼음이 살짝 얼어있는 백록담은 그 모습 자체가 장엄하고
신비롭다. 게다 오늘은 시원하게 사방으로 터지는 조망이 환상적이다. 찬 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불면 어떠랴, 추위를 느끼지 못할 만큼 이 순간이 소중한 걸.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공항까지 가야 할 시간은 정해져 있고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는 백록담을 뒤로 하고 하산 길.
하산은 관음사 방향. 성판악에서 정상에 올라 경관이 좋은 관음사지구로 내려가는 것이 한라산의 풍광을 여유 잇게 즐길 수 있는 코스. 내려가는 내내 깊은 원시림과 수려한 바위지대 거기에 눈까지 쌓여 계속 절경이 펼쳐진다.
나무 데크를 지나니 두텁게 쌓인 눈, 그리고 가파른 길. 북릉과 왕관바위의 수려한 풍광과 산간마을의 평화로운 모습이 펼쳐진다. 하지만 저 산간마을도 멀리서 보기 때문에 이리 아름답겠지. 이제 한라의 신비에서 세속으로의 하산 길이다.
워낙 경관이 좋아서일까, 왕관릉 헬기장에는 몇 사람이 넋을 잃고 경치를 보고 있다. 삼각봉대피소와 고도 1300m 지점을 지나니 점차 눈이 사라진다. 한겨울에도 녹색으로 빛나는 겨우살이 모습을 구경하다 보니 소나무지대. 조금 더 내려가니 탐라계곡 대피소다.
<왕관릉 헬기장>
<아직 겨우살이는 푸르름...>
탐라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니 숯가마 터와 구린굴. 이제 길은 평탄하고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는 한적한 길. 주변 풍광을 즐기며 여유 있게 걷다 보니 어느새 날머리인 관음사지구가 나온다. 6시간이 조금 넘는 산행 완료.
<탐라계곡대피소의 안내도>
<여기 숯가마터를 지나면 구린굴, 산행이 거의 끝나간다>
관음사지구에서 제주 가는 버스 정류장은 차도로 3Km가 넘는 거리. 차도를 걷기 싫어 마침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고 버스 정류장까지 가기로 한다. 요금 5,000원. 그런데 공항 가는 교통을 물어 보니 제주에서 다시 갈아타야 하고 복잡. 결국 12,000원을 주고 공항으로 그대로 직행하기로 한다. 일행들을 한참 기다려 같이 귀경. 1박 2일의 제주 세미나 완료.
<관음사지구 도착, 날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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