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왕봉 - 5월 지리산에서 한겨울을 느끼며 심설산행
* 산행지: [백두대간 천왕봉구간] 중산리에서 벽소령 대피소까지(음정마을로 하산)
- 천왕봉(1,915.4m)~제석봉(1806m)~연하봉(1730m)~촛대봉(1703.7m)~세석~영신봉(1651.9m)~칠선봉(1558m)~벽소령대피소(1,340m)
* 산행일: 2010년 5월 1일(토), 약간 흐림
* 산행경로 및 시간: 중산리(4:06)~망바위(5:09)~로터리대피소(5:38)~천왕샘(6:56) ~천왕봉(7:17)~통천문(7:36)~제석봉(7:57)~장터목대피소(8:11~8:45)~~연하봉(9:04) ~촛대봉(9:55)~세석대피소(10:08)~영신봉(10:22)~망바위(11:17)~선비샘(11:54) ~벽소령대피소(12:49~13:22)~음정마을(15:00)
<산행시간: 약 11시간, 휴식 등 1시간 30분 포함>
* 산행거리: 중산리~5.4km~천왕봉~1.7km~장터목대피소~3.4km~세석대피소~ 0.6km~영신봉 ~5.7km~벽소령대피소~6.7km~음정마을, 총 23.5km (마루금 11.4km, 연장 12.1km)
지리산 천왕봉으로 산악회 따라 무박산행 출발, 오늘은 회사 유차장과 동행이다. 어둔 밤을 달려 단성IC 를 통과 새벽 4시 들머리인 경남 산청군 시천면의 중산리 도착. 어둠에 잠겨 있는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도로를 따라 오르다 산길로 접어든다.
중산리야영장(해발 637m) 이정표는 천왕봉까지 5.4km, 천왕봉까지는 해발고도 1,300여 미터를 올라야 한다. 초입부터 가파른데다 걷기 힘든 돌길. 사위는 모두 어둠에 잠겨 있고 바로 옆 계곡 물소리가 꼭 한 여름 장대비 쏟아지는 것처럼 거세게 울린다.
<중산리 탐방지원센터>
장터목대피소 갈림길(천왕봉 4.1km, 장터목대피소 4.0km)과 출렁다리를 지나 가파른 길을 한참 오르니 해발 1,068m의 망바위. 서쪽에 하얀 달이 살짝 걸려 있고 차가운 바람소리가 꼭 파도소리처럼 들린다.
작년 천왕봉 오를 때 새벽에 먹은 라면이 잘못돼 고전했는데 오늘도 컨디션이 영 아니다. 하긴 지난 한 주간 무리한 일정에다 내려오는 동안 잠을 못 자고 꼬박 밤을 세웠으니 어찌 좋은 컨디션을 기대할 수 있을까?
몇 년 전의 지리산 주능선 종주(34km) 때와는 달리 작년과 올해 계속 쩔쩔매며 힘들게 오르니 이제 지리산은 내게 너무도 힘든 산으로만 기억되리라.
암봉 왼쪽 사면 길을 지나니 조금씩 날이 희뿌옇게 밝아오고 주변 산죽 밭에는 잔설이 희끗희끗하다. 헬기장에 올라서니 새벽 장엄한 지리산 아래 법계사가 안온하게 새벽을 맞는다. 법계사는 해발 1,400m 높이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절. 설악산 봉정암이 1,200m를 조금 넘는다.
곧 이정표(천왕봉 2.2km)가 있는 로터리대피소, 대피소 안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호들갑을 떨기 시작해 동쪽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붉은 해님이 살짝 산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지리산 일출! 비록 지리산10경중 일경인 천황봉 일출은 아니지만 산에서 보는 일출 광경이 신비롭고 감동적이다. 대피소에서 잠시 쉬다가 법계사 일주문에서 합장배례하고, 일주문 왼쪽 길을 따라 출발. 이제 천왕봉은 2km 남았다.
<법계사가 모습을 드러내고>
<법계사>
법계사에서 조금 더 오르니 주변엔 잔설이 점점 늘어난다. 여기 이 정도 눈이 쌓여 있으면 정상 주변은 어떨지 아이젠 준비도 안 했으니 슬며시 걱정이 된다. 암반지대를 지나는데 거센 바람이 모자를 날려 한참 다시 내려가야 했다.
가파른 계단 길을 오르니 개선문(천왕봉 0.8km)이 나오고 다시 가파른 계단길이다. 주변엔 구상나무들이 앙상한 겨울나무 사이에서 더 푸르다. 조금 더 오르니 남강 발원지인 천왕샘, 바위 틈새에서 나오는 차가운 물을 마시니 가슴 속이 뻥 뚫리는 듯 온 몸이 후련하다. 주변엔 계절에 걸맞지 않게 고드름이 크게 달려 있어 이채롭다.
<개선문>
<천왕샘 옆 고드름>
<암반 사이 천왕샘이>
천왕봉 동쪽 사면 가파른 철계단과 돌길을 힘들게 오르니 중봉 갈림길에 이정표(대원사 11.7km, 장터목 1.7km, 중산리 5.4km)가 있고, 바로 좌측이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1915m). 자연석으로 된 상석 뒷면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씌어 있다. 민족 정기가 깃든 장엄한 백두대간의 종착점이자 시작점인 천왕봉에 걸맞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망무제 시원한 조망을 기대했건만 사방이 온통 짙은 구름으로 쌓여 있고 찬바람이 워낙 거세게 불어 한겨울 추위다. 잠시 머물다 거친 바위지대를 지나 장터목 산장 방향으로 향한다. 등로에는 눈이 두텁게 쌓여 있고 군데군데 내리막길이 너무 미끄러워 조심스러워진다. 게다 찬바람이 계속 몰아쳐 손이 곱을 정도로 춥다.
<중봉 갈림길>
<천왕봉>
통천문(1,814m)으로 내려서는 철계단에서 제대로 미끄러져 넘어진다. 계단 몇 개를 주르륵 미끄러지니 정신이 아뜩하고 순간적으로 어디 부러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겨우 멈췄는데 팔부터 무릎까지 통증이 심하고 얼얼해 꼭 몸 한 쪽이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다. 산행을 하면서 이렇게 심하게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처음. 간신히 일어나 보니 다행히 어디 부러진 것 같지는 않아 다시 출발. 걸을 때마다 심한 통증이 오는 오른 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제석봉으로 향한다.
<통천문>
곧 고사목이 있는 제석봉이다. 여기 고사목은 자연적인 고사목이 아니고 자유당 말기 실력자 아들이 함부로 나무를 벌목하다가 문제가 되자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을 질러 불탄 거목들의 잔해라 한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지금도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그대로 섞여 있고 도덕성을 부르짖던 사람이나 때 묻은 사람이나 다 똑 같다는 생각이 드니 함부로 욕하기도 조심스럽다.
제석봉에서 장터목대피소는 지척, 눈 쌓인 미끄러운 길을 내려가 산행객들로 복잡한 장터목대피소에 내려선다. 남쪽 중산리에서 올라온 산청군 시천면 사람들과 북쪽 백무동에서 올라온 남원 함양 사람들이 물물교환을 했던 곳이라 장터목.
대피소에서 한참 쉬면서 따끈한 캔커피를 사 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아무래도 미끄러운 길이 부담돼 대피소에서 아이젠 한 쌍(9,000원)을 사고 다시 출발. 산행은 준비가 철저해야 하는데 오늘은 겸손함이 너무 부족했다.
<장터목대피소>
<장터목대피소에서 연하봉으로>
연하봉으로 향하는데 눈이 더 두텁게 쌓여 한겨울 심설산행이다. 5월 지리산에서 한겨울을 느끼니 이것도 좋은 경험. 한참을 걸어 작은 암봉인 연하봉(1730m, 세석대피소 2.6km,장터목 0.8km)에 도착. 연하선경을 느끼기도 전에 촛대봉(1703m)으로 향한다. 대간 마루금이 끝없이 펼쳐지고 멀리 반야봉과 그 좌측에 노고단이 모습을 드러낸다.
삐죽삐죽 바위들이 솟은 촛대봉을 지나니 곧 넓은 고원지대인 세석평전이 눈에 들어온다. 곧 붉은 철쭉으로 아름다울 세석평전을 지나 대피소는 들르지 않고 그대로 출발. 이제 벽소령대피소까지는 5.7km의 거리. 그런데 이 길은 전에 왔을 때도 꽤나 지루한 길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촛대봉>
<세석평전 - 대피소>
이정표가 있는 능선 분기점 영신봉에 도착. 이곳 영신봉에서 남쪽 삼신봉 방향으로 소중한 낙남정맥이 뻗어가고 영신봉 안부가 바로 산상초원인 세석평전. 가파른 계단을 올라 암릉지대를 지나니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 계단이 이어진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앞에서 오던 아주머니 “내려오는 아저씨가 정말 부럽네요” 하면 말을 건네온다. 그래서 ‘전 이제 다시 오르막길이 될 텐데요?’하고 받는다. 역시 눈이 수북하게 쌓인 사면 길을 오르니 전망안내도가 있는 망바위에 서니 동북쪽으로 천왕봉과 우측으로 영신봉, 촛대봉 등 지나온 지리 주능선 마루금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망바위에서 지리 주능선 조망>
<좌측 중봉~천왕봉~연하봉, 우측 맨 뒤가 촛대봉>
망바위에서 30분 넘게 가니 넓은 공터가 있고 그 아래 선비샘(벽소령 2.4km). 물맛을 보고 덕평봉을 우회하는 좌측 길을 따라 오르니 산죽밭을 지나 작은 봉우리로 올라서고, 다시 산 사면을 계속 가니 이정표가 있는 넓은 공터가 나온다. 날이 풀려서인지 눈이 녹아 이제 질척질척한 길이다. 한참 지루한 길을 내려오니 벽소령대피소 1.1km 이정표가 있는 공터, 바로 일명 신벽소령이다.
이제 벽소령 가는 길은 임도 수준의 넓은 길. 20분 정도 평탄한 길을 걸으니 벽소령대피소가 보인다. 천왕봉에서 11.4km를 걸었으니 천왕봉에서 성삼재까지 지리 주능선 28.4km의 40% 정도 온 것. 이번 대간 산행은 여기까지이고 성삼재까지 남은 길은 다음 산행의 몫, 오늘은 여기서 우측 음정마을로 하산하게 된다.
<선비샘의 이정표>
<신벽소령>
<벽소령대피소>
벽소령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 한참 쉬다가 우측 음정마을 방향으로 하산. 벽소령대피소에서 음정마을까지는 6.7km의 길. 너덜지대를 내려오니 임도로 내려서고 이정표가 보인다.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주변 숲은 아직 겨울 숲. 한참을 내려와서야 진달래가 조금씩 피어 있다.
<음정마을 가는 임도>
음정에서 벽소령 가는 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라는데 다리가 아파서일까 그냥 지루한 길일뿐 힘들게 걸어 내려온다. 산 아래는 이미 완연한 봄 사사면에도 산벚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다. 먼 산은 줄기마다 눈을 안고 있는 한겨울. 포장도로를 따라 죽 내려와 해발 700여m에 위치한 음정마을로 들어서 산행 완료. 산행을 마치고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이 어찌 이리 시원할까.
<음정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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