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여행] 창녕에서 만나는 겨울 서정 – 화왕산과 우포늪
- 여행일
갑작스레 떠난 창녕 여행. 화왕산과 우포늪의 겨울 풍경이 보고 싶었고, 창녕박물관의 송현이 모습도 궁금했다. 사실 그보다는 일상에서의 떠남으로 혼란스런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여유를 다시 찾고 싶었다. 떠나는 길, 흰 눈밭을 배경으로 회갈색 나뭇가지들이 앙상하게 서 있는 모습이 왜 그리 내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창녕은 화왕산과 우포늪의 명성 외에도 양파의 고장이고 진흥왕척경비를 비롯한 많은 문화유적지가 있는 곳. 창녕의 옛이름은 비사벌, 가야시대만 해도 후기 6가야 중 하나(비화가야)였을 정도로 번성했던 곳인데 가야는 한반도 4국 중 가장 먼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창녕은 이제 작은 농촌도시로 남았다.
<창녕박물관>
3시간 넘게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려 창녕IC를 나오니 창녕 동쪽에 장벽처럼 솟아 있는 화왕산 모습이 보인다. 창녕 여행의 첫걸음은 창녕의 진산으로 산림청 선정 100명산 중 하나인 화왕산 등산. 홍수피해가 많았던 창녕은 수기(水氣)를 누르기 위해 고을을 감싼 진산의 이름에 불 화(火)자를 넣었다고 한다.
산행 들머리는 창녕읍 북쪽의 창녕박물관. 옥천이나 자하곡매표소 쪽에서 오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목마산성을 따라 정상으로 갈 계획. 정상에서 내려와 산성 일대를 둘러보고 관룡산을 올라 용선대를 지나 관룡사로 하산한다.
창녕읍으로 들어서 창녕박물관 주차장에
<산행 들머리인 교동고분군>
화왕산은 사방으로 시원하게 트이는 조망이 일품인 곳인데 오늘은 아쉽게도 날이 흐리다. 그래도 서쪽으로 창녕 시가지, 그 너머로 하얗게 눈 쌓인 우포늪. 정상에서 뻗어 내린 거친 암릉이 수려하고, 아래 화왕산성이 에워싼 넓은 분지는 둘레만 10리에 이른다는 억새 군락. 이곳 산성은 임진왜란 때
이제 동문으로 나가 허준촬영지와 청간재를 지나 관룡산에서 관룡사로 하산하면 된다. 동문 방향으로 잠시 가다 아래 분화구인 용지를 보기 위해 억새밭 사이를 걸어 서문으로 내려간다. 서문 옆에서 막걸리 한 잔 사 마시고 동문 방향으로 가니 분화구였던 3개의 연못이 있고 창녕조씨 득성설화지 안내판이 있다.
안내문을 보니 “신라 진평왕 때 한림학사
<동문에서 보는 산성 내 억새밭과 용지, 창녕조씨 득성지지>
동문을 나가 넓은 길을 따르니 드라마
이정표를 보니 관룡사까지 2.0km(화왕산 1.8km). 이제 관룡산으로 접어드는 것. 눈이 하얗게 쌓인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니 구룡산 가는 갈림길. 좌측으로 가면 구룡산 가는 길이고 우측 바로 위가 넓은 헬기장인 관룡산 정상(754m).
<허준 세트장>
거친 암릉지대를 지나니 앞에 높다란 직벽 바위, 용선대 위에 자리잡고 있는 석불의 자태가 모습을 드러낸다. 영험이 있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 295호,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너무도 좋다.
게다 주변 수려한 산세를 배경으로 탁 트인 넓은 공간에 자리잡고 있어 장엄한 공간을 연출한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천년 넘게 이런 외딴 바위 위에 자리잡고 있는 불상인데도 훼손되지 않았다는 점이 너무도 다행스럽다. 불상 뒤에 앉아 한참 쉬다가 이제 관룡사를 향해 출발. 낙엽이 수북하게 갈린 길을 걸으니 우측에 대숲이 보이고 관룡사.
<용선대와 석불>
관룡사는 원효대사가 100일 기도를 마친 날 화왕상 정상의 월영삼지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여 볼 觀, 용 龍 자를 써 관룡사(觀龍寺)라 했다 한다.
법당에 참배하고 질병을 낫게 해준다는 약사전으로 간다. 약사전이 보물 제 146호, 약사전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은 고려시대 불상으로 보물 제519호, 약사전 앞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 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11호)
관룡사주차장에서 조금 내려오다 포장 길 걷기가 싫어 창녕택시(15,000원)를 부른다. 가면서 기사에게 음식점 소개를 부탁했더니 창녕 특산물은 송이와 양파인데 지금은 철이 아니라 추천하고 싶지 않고, 옥천 된장마을에서 생산되는 된장으로 만든 음식이 괜찮다며 자하곡매표소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된장마을 음식점을 소개해 준다.
창녕박물관으로 돌아와 창녕 송현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5~6세기 가야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기획특별전 비사벌 전’을 둘러본다. 여기서 송현동 고분군 15호 고분에서 출토된 6세기 순장소녀
창녕은 옛 후기 6개 가야 중 하나였던 비사벌(비화)가야가 있던 곳.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의
* 김훈의 소설 '현의 노래'는 가야 왕의 장례 모습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왕과 함께 묻힐 순장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가야는 순장제도가 광범위하게 시행되었던 나라이고, 신라는 지증마립간 3년(502년)에 왕이 순장을 금하라는 명령을 내려 순장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된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택시 기사에게 소개 받은 자하곡매표소 입구에 있는 된장마을로 가 청국장을 곁들인 불고기정식을 먹고 부곡온천지구 내에 있는 호텔로 간다. 부곡온천지구는 1973년 온천수가 발견되면서 급속하게 개발이 된 곳. 예약한 여관 수준의 한성호텔(055-536-5131은 낡았지만 온천물이 좋아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았던 곳.
여행 둘째 날 아침, 호텔 근처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때우고 창녕읍으로 돌아간다. 오늘은 창녕 읍내 유적지와 우포늪을 둘러보고 귀경할 계획. 먼저 창녕읍 만옥정 공원을 찾는다.
맨 먼저 만나는 것은 진흥왕 척경비(국보 제33호, 창녕읍 교상동). 예전 중학교 국사 시간에는 진흥왕이 영토를 넓힌 창녕,북한산,황초령,마운령 네 곳에 세운 순수비라고 배웠다. 그런데 안내문을 보니 “다른 세 곳의 순수비와는 달리 순수관경이라는 말이 없고 왕이 점령지를 다스리는 내용과 이에 관련된 사람들을 열거했으므로 따로 척경비라 일컫는다”고 되어 있다. 앞 부분은 마모가 심해 판독하기가 힘들었겠다 는 생각이 든다.
척경비 앞쪽에는 퇴천 3층석탑과 객사가 있다. 객사는 외부관원이나 외국 사신이 묵었던 숙소이며 임금과 대권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는 곳. 중앙에 주 건물이 있고 좌우에 익사가 있는 구조였으나 지금은 주 건물만 있고 기둥과 지붕구조만 남아 있다.
<퇴천 삼층석탑>
<창녕 객사>
이제 보물 제310호인 창녕 석빙고를 보러 간다. 석빙고는 겨울에 얼음을 저장했다가 여름까지 얼음을 사용했던 지금의 냉장고. 민초들이 그 추운 데 얼음 깨느라 꽤 고생했겠다. 보온을 위해 흙을 덮었기 때문에 모양이 꼭 무덤 형태이다. 석빙고 앞 비석의 기록에 영조 18년(1742년) 이곳 현감이었던 신서에 의해 중수 되었다고 되어 있다.
석빙고를 보고 이제 또 하나의 국보를 보러 간다. 술정리 동(東)삼층석탑.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탑이고 규모가 커(5.75m) 기품 있고 위풍이 느껴진다. 1965년 해체 수리 중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는 용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동(東)삼층석탑을 보고 이제 1억 4천만년 태고의 신비를 찾아 창녕에서 서쪽으로 겨울 우포늪으로 간다. 우포늪은 국내 최대 51만평의 광활한 자연늪지로 1997년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했고, 1998년 람사르협약에 등록됐다. 1억 4천만년 전 낙동강에 밀려든 바다 퇴적물이 수로를 막아 낙동강 물이 역류하고 물이 빠지지 않아 늪지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1억 4천만년이 걸린 대역사.
먼저 우포늪생태관(055-530-2690)으로 가 전시 내용들을 둘러보고 3D 영화까지 한 편 보고 탐방로를 따라 전망대로 출발. 우포의 4계 모두 다른 얼굴로 아름답다고 했는데 생명의 신비를 느끼기에는 너무 추운 계절. 하지만 꽁꽁 얼어 붙은, 텅 빈, 한적한 우포늪을 보며 마음이 그리 편해질 수 없다. 우포늪에서 느끼는 겨울 서정.
겨울은 모든 것을 다 비우고 그리고나서 다시 채워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대로 보여 준다. 저 한적하고 삭막한 눈밭에서 늪의 생명은, 그 기운은 그대로 남아 있으리라.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을 모두 둘러보는데 4시간이 걸린다니 오늘은 시간이 부족하다. 가을날 물안개 가득한 늪의 매력을 상상하며 우포늪을 떠난다.
<우포늪 생태관>
<산토끼 노래 덕분?>
<우포늪 겨울 풍경>
우포늪을 나와 합천방향 이방면으로 출발. 우포늪 생태관 옆에 있는 산토끼 노래 유래 안내판을 보고 어릴 적 불렀던 '산토끼' 노래가 태어난 이방초등학교를 들렀다 가기로 한 것.
낙동강 공사 현장을 지나 이방면 시골의 이방초등학교 도착. 산토끼 노래는 1928년 이방초등학교에 근무하던
이방초등학교에서 나와 이제 창녕방향으로 출발. 도중 창녕 석리의 성씨고가와 양파 시배지를 둘러보고 점심으로 우포늪붕어찜을 먹기로 한다. 전화(우포늪붕어찜 532-2088)로 위치를 확인하니 이방초등학교에서 성씨고가 가기 전 길가 좌측에 있는 작은 집. 다시 되돌아가 붕어찜 주문, 커다란 붕어를 씨래기와 함께 삶아 깊은 맛이다.
이제는 귀경 길, 창녕을 다 돌아보기에는 너무 짧았던 1박2일의 여행을 마친다. 멀지만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행복한 것.
<성씨 고가>
<양파 시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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