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3코스 - 인월에서 금계까지
(2,011년 3월 29일)
함양 여행의 시작은 역시 지리산둘레길. 봄을 맞는 큰 자연을 느낄 수 있고 긴 걸음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곳. 많은 이들이 '걷는 것은 새로운 출구를 만나는 경험'이라고 했다. 이 여행에서 난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까?
무언가 버리고 싶어 떠난 1박2일의 여행. 하지만 버리는 여행이 아닌 추억 여행이 되고 말았다.
<지리산 둘레길 3구간>
88고속도로 지리산IC를 통과 11시가 넘어 둘레길 3구간 출발 지점인 인월에 도착한다. 3구간은 전북 남원시 인월에서 경남 함양 마천면 의탄리까지 19.8km, 지리산 주 능선을 조망하며 넓게 펼쳐진 다랭이논과 6개의 산촌마을을 지나 엄천강으로 이어지는 길. 옛 고갯길 등구재가 남원과 함양의 경계가 된다.
평탄한 길이 대부분이니 소요시간으로 나와 있는 8시간보다야 적게 걸리겠지만, 실컷 여유부리며 걸을 계획인데 과연 어둡기 전에 금계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까? 하긴 오늘 못 걸으면 내일 마저 걷고, 꼭 한 구간을 다 마쳐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인월 지리산둘레길 안내센터>
인월면 지리산둘레길 안내센터 앞에 주차하고 출발. 구 인월교를 건너니 왼쪽 제방에 둘레길 출발지점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지리산 둘레길 인월 → 금계 제3구간 시작점입니다” 이정표를 보니 금계방면 19.8km, 안내센터 0.5km (2코스인 운봉 9.4Km), 그러니까 일단 오늘 걷는 거리는 20Km는 넘는 것.
<3구간 도착지인 금계까지 19.8Km, 2구간인 운봉까지는 9.4km>
둑방길을 따라 둘레길 출발. 천변 풍경은 한가로운데 가뭄 탓인지 개울은 푸른 이끼가 잔뜩 끼어 있고 깔다구로 보이는 작은 곤충들이 계속 떼로 몰려 든다. 출발 분위기가 영 아니다.
1.5km 정도 제방 길을 걸으니 담에 벽화가 그려져 있는 중군마을. 중군마을은 임진왜란 때 이곳에 중군(中軍)이 주둔했다 하여 중군리. 벽화에 중군마을이라고 쓰여 있고 양손에 잣과 꿀을 든 모습이 보인다. 그러니까 이 마을 특산품이 잣과 꿀인가 보다.
<둑방 길을 따라 3구간 출발>
<중군마을에 들어서고>
안온한 분위기의 마을 길을 가니 길섶에는 이른 봄을 알리는 짙은 하늘색 개불알풀(봄까치꽃) 꽃이 한창이다. 꽃 구경도 하고 걸려온 전화도 받고 여유 부리며 걷다 보니 곧 황매암 갈림길. 우측이 황매암을 들러 수성대로 가는 길. 좌측은 포장 임도를 따라 삼신암 쪽으로 가는 임도 길.
앞에 가는 몇 명은 좌측 길로 가버리고 우린 황매암 방향으로 결정. 그런데 포장도 우측에 무성한 잣나무 낙엽이 깔린 걷기 좋을 것 같은 숲길이 보인다. 숲길을 가면 다시 포장도로와 만날 것을 기대하고 우회전 했는데 무성한 잣나무 숲을 지나 길은 계속 다른 방향으로 이어진다. 제법 경사가 있지만 숲길을 걷는 기분도 좋아 한참 따라 올라갔다가 다시 되돌아 나온다.
그런데 샛길로 너무 많이 걸었다. 알바 아닌 알바. 중군마을에서 황매암까지 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를 한 시간 넘게 걸었다.
<개불알풀이 밭둑에 지천>
<황매암 갈림길 - 좌,우 어느 길이나...>
다시 포장도로로 나와 6~7분 걸으니 좌측으로 황매암 가는 길이 보인다. 직진하는 포장도로는 바로 황매암 가는 길일 것. 곧 산사의 그윽한 정취가 느껴지는 작은 암자 황매암에 도착. 대웅전에 가 참배하고 석천(샘)으로 내려오니 정자 한 쪽에 마음에 와 닿는 좋은 글귀가 보인다.
모처럼 내 두 발로 스스로 나선 길
살아온 삶~ 진솔하게 돌아 볼 순간 되고
다가 올 인생~ 새로운 포부 키울 소중한 기회 되시길.
숲, 바람, 하늘, 구름~
이 우주 온갖 것이 오직 나와 연결되어
비로소 생명으로 빛나고 있음 발견하시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모든 순간들
오로지 사랑과 연민 나눠야 할 때임을 깨달으시길.
<고즈넉한 황매암>
이제 수성대 가는 길. ‘황매암 위 쉼터’를 지나니 잠시 돌 계단길이 이어진다. 숲에는 산죽만 푸른 빛 그리고 아직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빽빽하다. 걷기 좋은 오솔길을 걸어 고개로 올라서고 다시 소나무 향 그윽한 숲길을 걸으니 수성대 쉼터가 있는 포장도로.
<황매암에서 수성대 가는 길>
‘1박2일 은지원이 쉬어 갔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수성대(상투봉) 쉼터에서 물오른 버들가지를 보며 전 하나 시켜 점심을 때운다. 중군마을 사신다는 여기 쉼터 아주머니 전 부치는 솜씨가 영 어설퍼 보인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면 어떡하려고 그리 느긋하세요?”
“작년에 처음 시작할 때는 더뎌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문제 없어요. 사람이 많으면 빨리 하지요”
전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이 아주머니 느긋함은 솜씨가 없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순박함과 여유다. 지리산둘레길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즐거움.
<수성대 쉼터>
<쉼터에서 포장도를 따르다 좌측 계곡으로 내려간다>
막걸리까지 한잔 마시고 다시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오르니 좌측 계곡으로 안내표시가 있고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산내매동 방면)이 보인다.
계곡을 건너니 다시 쉼터가 있는데 무인쉼터인가 보다. 앞에 누군가 막걸리만 마시고 사정상 돈은 못 넣었다는 리본을 달아 놓았다.
다시 깊은 산속 오솔길, 걷기 좋은 길이 계속 이어진다. 오솔길을 따라 오르니 운봉고원이 호수일 때 배가 넘나들었다는 배너미재. 1구간 출발지점인 주촌(舟村)은 배 마을, 백두대간이 지나는 고리봉은 배를 묶어 두었다는 곳. 이곳은 언제 호수였을까 아님 노아의 방주 얘기처럼 어디나 다 있는 홍수 전설이 이곳에도 있었던 것일까?
<오솔길은 배너미재로 향하고>
<배너미재>
배너미재를 넘어 조금 내려가니 아래는 장항마을, 그 뒤 왼쪽으로 서룡산이 보인다. 주변은 고사리밭. 앞에 천왕봉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드리운 높이 18m, 수령 400년의 노루목 당산 소나무가 보인다. 지금도 당산제를 지낸다는 장항마을 당산목.
아름다운 소나무와 지리산 주능선 천왕봉이 빤히 보이는 환상적인 길. 수려한 소나무 모습이 아름다워 아래 벤치에서 한참 쉬다가 간다. 쉬는 시간이 너무 많지만 이 길은 바삐 서두는 것보다는 여유 있게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게 더 좋은 길.
<배너미재에서 장항마을로 내려서며..., 주변은 고사리 밭>
<뒤로 보이는 지리 주능선 - 천왕봉 주변은 아직 눈이 하얗게>
<장항마을 당산 소나무>
<장항마을 이정표, 매동삼거리까지 1.7km>
대나무 숲을 지나 포장도로를 걸어 장항마을 버스 정류장(출발지점인 인월마을로 갈 수 있음)을 만난다. 걷기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유혹이 되겠다.
이제 길은 우측으로 포장도로를 따라 가면 된다. 길가 화장실에 들렀다, 남근전시장도 기웃거리고, 약수터(신령생약수)도 만나면서 계속 도로를 따르니 매동마을 표석이 보인다. 매동마을은 마을 형국이 매화꽃을 닮은 명당이라서 매동(梅洞)마을.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길가 남근전시장>
<이제 매동마을 도착>
마을을 가로지르니 길은 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나 노송들이 아름다운 마을 뒷산으로 이어진다. 어릴 적 놀던 동네 뒷산 같은 분위기의 길을 지나 갈림길(매동마을 0.5km, 등구재 5.3km)에서 우측 숲으로 접어들고 곧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농특산물 판매장 천막이 있는 서룡산 갈림길 벤치에 앉아 쉬는데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청년 둘이서 올라온다. 우리 일행처럼 인월에서 출발해 금계까지 간단다. 젊을 때 좋은 친구와 이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기회와 여유, 앞으로 그들의 삶에 있어 풍족한 자양분이 될 것으로 믿는다.
<매동마을 뒷산을 오르며 바라본 지리 주능선>
계속 울창한 소나무 숲길. 소나무 숲을 걷는 운치와 기분이 환상적이다. 3코스는 걷는 거리가 제법 길지만 제방, 숲길, 농로, 임도를 골고루 체험할 수 잇고 소나무 숲길이 워낙 좋아 1~2코스보다는 걷는 길이 다채롭고 힘들지 않다.
길옆 돌담이 보인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 옛적 이곳에, 이 깊은 산속에 살았던 사람들, 아마도 지난한 민초의 삶이었겠지. 그래도 부부가 정겹게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산을 일구며 나름대로 행복한 삶이었을 게다. 사람의 삶은 대개 그러하니까. 돌 징검다리도 만나고, 약수터를 지나 잠시 오름길. 곧 지리산의 장엄한 주능선을 마주하는 상황마을을 만나게 된다.
마을로 내려서는데 아직 눈이 하얗게 쌓여 있는 장엄한 지리산 주능선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지리산! 몇 번을 가봐도 어머니 품처럼 늘 그리운 대상. 이렇게 항상 지리산을 대하며 사는 사람들은 저 지리산처럼 심지가 굳고 후덕할 것 같은 느낌이다.
길은 민박집 앞으로 이어지고 다랭이논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름 싱싱한 푸른 빛으로 가득할 논은 아직 스산한 겨울로 그냥 삭막한 풍경일 뿐.
무심코 들른 중황마을 쉼터. 잔치국수(3,000원)와 커피 한 잔을 시켰는데 아주머니는 준비한 것이 남았다며 냉이와 미나리를 넣고 부친 전을 내어 준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봄나물 향이 그대로 살아있는 데다 부드러운 맛이 일품. 잔치국수와 함께 나온 반찬은 아삭아삭한 묵은 김치, 들녘에서 직접 뜯은 어린 봄 머위와 씀바귀 나물 무침. 입안 가득한 봄 향기는 바로 자연의 맛이고 생명의 에너지. 이런 자연의 맛은 둘레길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된다. 꼭 들러보기를 권하고 싶은 곳.
<중황마을 쉼터>
중황마을 쉼터를 나서니 아래 다랭이밭에 말 몇 마리가 보인다. 논둑길 쉼터를 지나 저수지 옆길을 가니 상황마을. 이제 금계는 5.7km(인월 13.6km)남았다. 상황마을의 다랭이논을 보며 등구재 가는 가파른 오름길. 강호동이 들렀다는 등구재쉼터를 지나니 아까 소나무 숲에서 만났던 두 청년이 길가에서 쉬고 있다. “금계까지 가자니 날이 저물 것 같다”고 걱정을 한다. 우리 처지도 마찬가지. 너무 여유를 부리며 걸었으니 금계까지 가기엔 무리가 될 것 같다.
<상황마을 이정표 - 금계까지 5.6km>
<다랭이논은 아직>
등구재는 지리산 북부 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을 잇는 옛 고갯길. “여기서부터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입니다”라는 함양군의 등구재 안내판이 보인다. 이제 전북에서 경남 땅으로 넘어가는 것.
이 고개에서 좌측으로 가면 삼봉산을 지나 지리산1관문 오도재로 이어지게 되고, 우측 숲으로 접어들면 백운산과 금대산을 거쳐 금계마을로 내려설 수 있다. 둘레길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창원마을을 생략하고 우측 산길을 따라 백운산을 지나 금계마을로 가는 것도 좋겠다. 아니면 오도재에서 삼봉산,백운산,금대산을 지나 금계마을로 하산하는 것도 좋은 방법.
<등구재 오르는 길에서 만나는 쉼터>
<등구재>
등구재를 내려서니 숲 속에 커다란 저수지가 보인다. 길은 창원마을로 직접 가지 않고 포장 임도를 굽이굽이 한참 돌게 되어 있다. 산길도 아닌 포장 길을 가게 만든 건 역시 주민들 불편 때문에 마을을 우회하게 한 것일까? 다리가 아픈 사람은 그냥 마을로 직진하는 것도 좋겠다.
포장도 옆 와불 능선이 조망되는 '창원농장 쉼터'에는 추억만들기 메모가 잔뜩 걸려 있다. 이곳에서 금계마을까지는 1시간 30분 거리. 포장 임도를 한참 걸어 천왕봉이 가깝게 보이는 창원마을 당산쉼터(창원윗당산)에 도착한다. 오늘은 지리 주능선을 원 없이 보면서 걷는다.
<쉼터 추억만들기 메모들 - 뒤로는 와불능선>
<창원마을 윗당산>
<창원마을 윗당산에서 보는 지리 주능선>
넉넉한 곳간 마을 창원마을로 내려서니 이정표는 금계마을까지 3.2km. 창원마을은 조선시대 마천면 내의 각종 세를 거둔 물품들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다 하여 창말(창고마을)이라고 불렸는데, 이후 이웃 원정마을과 합쳐져 창원이 되었다고 한다. 안온한 마을 길을 따르니 하늘길쉼터 민박이 있는 곳.
마침 민박집 사람이 나와 있어 금계까지 가는 길을 물어보니 "곧 숲길이 이어지는데 어둡기 전에 통과하기는 무리"란다. 이제 선택은 어둠을 뚫고 그냥 금계까지 가는 것. 창원마을로 되돌아가 택시를 부르거나 한참 기다려 버스를 타고 인월로 돌아 가는 것. 다른 대안은 이곳 민박에서 하루 쉬고 내일 아침 바로 금계로 가는 것.
내일 남은 길을 마저 걷기로 하고 민박집에서 하루 묵기로 한다. 방 하나에 4만원, 저녁식사 1인 5,000원. 우연히 하룻밤 묵게 되었지만 젊은 주인 내외의 친절과 정갈한 음식이 맘에 들었던 곳, 이곳도 3구간 걷다 힘들면 머물 만한 장소. 주인 내외는 둘레 길이 알려지기 전 이곳에 왔다가 풍광이 너무 좋아 부산에서 이곳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둘레길을 이어간다.
어제 7시간 동안 17Km 정도를 걸었고 오늘은 3Km 정도의 남은 구간. 다랭이논 위로 난 마을 길을 지나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울창한 송림, 왜 그랬는지 우측은 넓게 벌채를 해 놓았다. 고개에 올라서니 역시 지리 주능선 조망지점이라 표시해 놓았다. 작은 나무다리를 건너 숲길은 끝이 나고 곧 금계마을로 내려선다.
<길은 다랭이논 위로>
<다시 지리산을 보고>
마을 길을 걸어 내려와 1999년 3월 폐교된 의탄분교 앞 버스 정류장 도착. 창원마을에서 55분 걸렸다. 자연과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며 걸었던 길. 길은 4코스로 계속 이어지지만 오늘은 여기에서 마침표. 하지만 길이 계속 이어지듯 내 걸음도 계속 이어져야 할 것.
정류장에서 보니 좌측 커다란 바위에 불상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불상 조성하는 좌측 방향이 지리산1관문 도재를 지나 함양 가는 길. 우측 방향이 마천을 거쳐 인월 남원 가는 길. 마침 정류장 벽에 전화번호가 있어 마천택시를 호출, 마천으로 가서(마천까지 4,000원) 남원 가는 버스를 타고 출발지점인 인월 도착. 총 8시간 걸린 둘레길 3구간 순례를 마치고 이제 함양 상림을 보러 갈 차례.
<나무다리를 지나 만나는 이정표>
<금계마을 옛 의탄분교에 있는 안내센터>
<금계마을 이정표>
<정류장 버스 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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