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여행 - 풍경의 여유가 있는 곳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계서당, 오전약수)
봉화여행 둘째 날, 하룻밤 머문 닭실마을을 나와 오전약수 방향으로 출발. 물야면의 북지리 마애여래좌상과 가평리의 계서당(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닭실마을에서 15분쯤 가니 북지리 마애여래좌상(국보 제 201호, 봉화군 물야면 북지리). 이 석불은 신라시대 조성된 높이 4.3m의 거대한 불상으로 1,947년 부지 정리 중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럼 오랫동안 잊혀졌던 부처님이네. 그 절실한 비원들도 같이 사라졌겠다.
원래 거대한 자연 암벽에 감실을 조성하고 그 안에 마애불을 조각한 것. 세월이 흘러, 지금은 감실도 무너지고 불상도 많이 훼손된 상태. 하지만 뛰어난 불상미(佛像美)로 부처님의 위용이 그대로 남아 있고, 7세기 중엽 신라 불상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마애여래좌상에서 계서 성이성의 계서당(중요민속자료 제 171호,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은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곳. 마을 초입 정자 옆 주차장에 주차하고 마을 길을 잠시 걸어 계서당으로 향한다. 길옆 논에는 콤바인으로 벼 수확이 한창이다. 사과나무 밭 뒤에 운치 있는 송림 아래 자리잡은 고택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계서당.
<계서당 가는 마을 길>
<사과나무 뒤로 계서당이 보인다>
계서당은 춘향전의 실존 모델로 알려진 계서 성이성(成以性, 1,595년~1,664년) 선생이 살던 곳. 부석사가 있는 봉황산 산줄기 끝자락(집 주인 설명)에 남향으로, 사랑채와 중문간채로 구성된 전형적인 영남 북부지방 ㅁ자 가옥 형태라고 한다. 다른 고택들에 비해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아담하고 품격 있는 모습.
계서당 안내문을 보니 계서 선생이 광해군 5년(1613년)에 처음 지었고, 집 주인의 설명에 따르면 선생이 워낙 청백리라 돈이 없어 집을 짓지 못했는데 시집 간 딸이 고생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부자 사돈댁이 전답을 주어 겨우 집을 지었다고 한다. 근데 계서 선생은 서른이 넘어 과거에 급제했고 집을 지은 건 19세 때인 1,613년. 그럼 남원부사를 지낸 부친(성안의)도 청백리라 돈이 없었다는 얘기?
<계서당 대문을 들어서고>
고택 대문을 들어서니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 왼편에는 춘향전에서
청백리로 유명한 계서 선생은 남원부사를 지낸 부용당 성안의(成安儀)의 아들. 인조5년(1,627년) 문과에 급제한 후 진주부사 등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냈고 3차례나 어사로 등용되었다 한다. 춘향전의 실존인물 여부에 대해 논란이 많았으나 최근 연구에서 ‘남원부사의 아들로 남원에 살다가 영전하는 부친을 따라 한양으로 떠났고, 후일 호남지방 어사또를 지낸 그가 춘향전의 실제 모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그가 남긴 호남암행록 등 기록이나 행적이 춘향전 내용과 일치한다는 것.
‘백두대간 가는 길(
<사랑채>
<사랑채 아래, 기와로 쌓은 모습이 "관광객 반기며 웃는 모습"이라고>
계서당은 지금도 살림집으로 사용되고 있어 집을 둘러보는 것이 조심스럽다. 그런데 계서 선생의 후손이라는 집 주인이 다가와 안내를 해 주신다.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드는 관광객들이 꽤 귀찮을 것 같은데도, 대단한 정성.
사랑채 대청 옆에는 보기 드문 소변기가 있고 그 옆에 작은 방이 있는데, 그 방에서 공부한 분이 장원급제한 방이란다. 풍수 대가들이 와서 보고 ‘거기서 공부를 하면 고시에 합격을 하고 크게 될 수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하더란다. 방으로 들어가 앉아 보니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여유롭고 그윽하다. “이런 좋은 장원급제 방을 그냥 두지 말고 민박을 하시라”고, “돈도 벌고 좋은 일 하는 거라”고 말씀 드리니 그냥 웃기만 하신다.
<굴뚝 옆 사랑채 작은 방이 명당 중 명당이라고>
<다시 명당 방을 보고>
<여기는 사랑채 소변 보는 곳>
<방에서 대청 밖을 보니>
<사당은 역시 별도 공간이고, 담장을 둘렀다>
<보호수 소나무>
계서당을 나와 조선시대 전국 약수 품평회에서 1등을 했다는 선달산 아래 오전약수로 이동. 거북이 입에서 약수가 나오도록 만들어져 있고, 옆 바위에 주세붕이 왔다가 썼다는 ‘인생불로 요산요수(人生不老 樂山樂水)’라는 글이 남아 있다. 철분 맛이 강한 약수 한 잔 마시고 내려와 입구 노점에서 배추, 무, 오이, 호박 등 한 보따리를 5,000원에 사 들고 춘양 방향으로 출발.
곧게 뻗은 춘양목이 자라고 있는 길을 따라 진행하니 ‘춘양목 산림체험관’이 보인다. 잠시 둘러보았는데 번듯하게 잘 지은 건물에 비해 내용물이 너무 빈약하다. 곧 춘양면 소재지. 이곳은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 도래기재 가기 위해 지나갔던 곳.
<오전약수>
<춘양목 산림 체험관>
오늘은 4,9일마다 열리는 춘양 장날. 시끌벅적한 시골 장날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의외로 장이 한산하다. 장터 가게 아주머니에게 “장날 맞느냐”고 질문했더니 “일요일 장날이라 그런지 한산하다”는 대답. 휴일 장날 때문이 아니라 농촌 인구 감소가 이유가 아닐까 짐작 된다. 어릴 쩍 요란했던 고향의 장날도 지금은 그런 모습이니.
시장구경에 대한 기대가 없어지니 이제 점심이나 먹고 귀경해야 할 시간. 시장 안에 있는 동궁회관에서 한우쇠고기와 송이돌솥밥으로 점심을 먹고 1박2일의 봉화여행을 마친다. 워낭 촬영지와 사고지, 만산고택을 못 본 것이 아쉽지만 그건 다음 여행의 몫. 추억 한 장을 가슴에 담고 귀로에 오른다.
'여행지에서 > 그곳에 가면 (여행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성 여행] 진부령과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산 건봉사 (0) | 2012.03.25 |
---|---|
[서산여행] 서산 개심사 – 상왕산 자락 마음을 여는 절 (0) | 2011.10.23 |
[봉화 여행 ②] 봉화읍 닭실마을의 청암정, 석천정사 (0) | 2011.10.18 |
[봉화 여행 ①] 봉화 청량산과 청량사 산사음악회 (0) | 2011.10.14 |
[함양 여행] 다시 지리산 자락으로 (함양 상림, 일두 정여창 고택 외) (0) | 2011.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