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기록/100대 명산 산행

[100대 명산] 경주 토함산, 석굴암주차장에서 최단코스 산행

카페인1112 2020. 12. 3. 19:47

불국토 경주 토함산(745m) / 월간산 선정 100대 명산, 블야 명산100 +

- 석굴암주차장에서 토함산 정상 왕복

 

 

 * 산행일: 2,0201117(), 흐림

 * 산행 경로 및 시간: 석굴암주차장(10:31)~정상(11:00~11:10)~성화채화지~주차장(11:32),

   <총 산행시간 1시간 1, 산행거리: 3.08km(주차장에서 정상 왕복)>

 

  경주여행 둘째 날, 아침 일찍 다른 한 군데 들르고 토함산 산행 하러 석굴암으로 간다. 경주 동쪽 토함산은 찬란한 신라천년 불교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을 품에 두고 있는 명산으로 통일신라 5악 중 동악으로 신성시 했던 곳.

 

  월간산 선정 한국의 100대 명산중 하나(산림청 100대 명산에는 포함되지 않음), 역사적 가치로서의 산으로한국 오악의 산이라는 점을 100대 명산 선정기준으로 들고 있다.

 

석굴암주차장에서 보는 종각

   오래 전, 석굴암 일출을 보겠다는 욕심으로 새벽 일찍 불국사 주차장에서 토함산 등산에 나섰는데, 석굴암에 가보니 새벽에는 당연히 문을 안 열었다.

 

  날까지 흐려 일출 보는 건 포기하고 그냥 토함산 정상으로 향했는데, 안개 낀 정상에는 누군가 새벽 고사 지내고 막걸리를 뿌렸는지 온통 술냄새 천지. 석굴암에서 아침 일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감동적일까나! 더구나 새해 첫날 일출이라몀!

 

석굴암 일주문

  토함산 중턱에 세워진 석굴암, 불교의 극락세계를 현실에 재현한 통일신라 최고의 걸작. 삼국유사에 재상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건립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는 한 개인이 아닌 그 시기 통일신라 국력을 집중해 최상의 작품을 만들었을 것.

 

  석굴암과 불국사는 1995년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당시 종묘와 해인사 장경판전이 같이 등재.

 

지킴터 앞으로 등로가 열린다

  오늘 토함산 산행은 석굴암주차장에서 출발하는 최단거리 산행. 토함산 정상까지 1.4km 부드러운 길, 사실 이건 산행도 아니고 아주 가벼운 산책 길.

  석굴암 일주문 옆 세계유산 석굴암 석굴표석 좌측 토함산공원지킴터 앞이 토함산 들머리.

 

 

   성화채화지 갈림길, 좌측 성화채화지는 하산하면서 들르기로 하고 패스. 우측 정상 방향(정상 0.8km)으로 간다. 계속 부드러운 숲길.

 

   완만한 길을 따라 오른다. 그러고 보니 탈해가 기원전 19년 아진포 바닷가에서 토함산으로 와 머물렀던 곳은 어디쯤일까? 석탈해는 신라 2대 왕인 남해차차웅(2대 왕) 사위가 되고 처남인 유리이사금 뒤를 이어 왕이 되는 대장장이 출신 인물. 그는 시종 두 명과 함께 토함산에 올라 일주일간 머물면서 서라벌 성안에 자신이 살 곳을 물색했다고 한다.

 

  외부에서 온 도래인이 작은 나라지만 본인 당대에 왕이 될 정도이니 실력이 대단했나 보다. 아마도 선진 제철기술을 갖고 있었겠지. 그 시절 알에서 태어났다는 위인들, 다 외부에서 앞선 문명이나 기술을 갖고 와 토착민들을 제압하고 권력을 잡았을 게다.

 

추령갈림길(정상 0.3km)
헬기장 위가 정상

  헬기장 지나 곧 토함산 정상(745m), 석굴암주차장에서 정상까지 1.54km, 여유 있게 걸어 29분 걸렸다.

 

  토함산은 신라인들이 통일신라 5악 중 동악이라 해 신성시 했던 곳. 동쪽 방향 동해가 보일 텐데 오늘은 날이 너무 흐리다. 서쪽에 경주남산과 단석산이 겨우 윤곽만 보이고.

 

경주남산과 단석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정상에서 잠시 주변 둘러보며 쉬다 하산. 산행시간이 짧아 여유 있게 쉬는 것도 괜찮은데, 놀러온 사람들이 많아 꽤나 번잡. 올라왔던 길 그대로 석굴암주차장으로 내려간다.

 

  하산 길 성화채화지로 가 잠시 둘러본다. 채화대 아래 바위에 비천상처럼 보이는 문양이 있는데 이건 뭘까? 혹시 이곳도 암자터였을까나. 채화지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하산. 짧은 산행 종료.

 

성화채화지
비천상 같은데..., 혹시 이곳도 암자터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