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과 백련사를 품고 있는 보석 같은 산, 강진 만덕산(萬德山)
* 산행일: 2,022년 3월 9일(수), 흐림
* 산행 경로 및 시간: 백련사주차장(10:20)~백련사(10:33)~다산초당(11:05~11:33)~깃대봉 갈림길(11:45)~만덕산 깃대봉(12:30~12:40)~백련사~주차장(13:09) <총 소요시간 2시간 49분(휴식 등 포함 널널하게)>
* 산행거리: 4.2km
강진여행 3일차, 아침 일찍 덕룡산 짧은 산행 마치고 천년고찰 백련사로 간다. 백련사와 다산초당 둘러보고 만덕산 산행까지 마치면 이번 여행 일정이 끝나는 것.
백련사주차장(강진군 도암면)에서 일주문 들어서니 양옆으로 울창한 동백나무 숲이 시작된다. 강진의 봄을 알리는 백련사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151호)은 평균 높이 7m 되는 동백 1,500여 그루가 백련사 주위에 자라고 있고, 꽃은 2~3월에 적색으로 핀다.
백련사 동백은 춘백이라 지금쯤 한창 붉은 동백꽃으로 물들어야 하는데 어째 꽃이 별로 없다. 어제 택시 기사 얘기대로 2월 냉해가 꽃봉오리를 꽁꽁 얼려 버렸나 보다.
기대가 컸던 백련사 춘동백은 푸른 동백잎 사이 붉게 핀 몇 송이로만 만족해야 했다.
해탈문 지나, 주변은 울창한 동백 숲. 동백은 나무에서 한 번, 땅에 떨어져서 한번 그리고 여인의 가슴속에서 또 한번 피어 세 번 피는 꽃이란다. 꽃말은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기다림, 애타는 사랑”
동백나무 숲 잠시 오르니 다산초당 갈림길. 이곳에서 바로 다산초당으로 갈 수 있지만 먼저 우측 백련사부터 둘러볼 계획.
백련사는 고려 후기 8국사를 배출했다는 유서 깊은 명찰. 신라 문성왕 시절 무염국사(801~888)가 창건하고 1,211년(고려희종 7년) 원묘국사가 중창했다고 한다.
창건 당시 산 이름을 따 만덕사였던 사찰 이름이 백련사(白蓮寺)로 바뀌게 된 것은 원묘국사가 주도한 백련결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백련사의 봄은 역시 동백과 매화. 만경루 쪽으로 오르면서 붉은 매화 한 그루를 만난다.
2층 누각인 백련사 만경루. 만경루 앞에 있는 배롱나무꽃과 만경루에 올라가서 보는 강진만 풍광이 일품인 곳인데, 아쉽게도 꽃은 계절이 아니고 풍광은 날이 흐려 기대 난.
만경루 아래 지나 돌계단 올라서면 대웅보전 앞마당이다. 대웅보전과 만경루 현판은 당대 최고의 명필 원교 이광사 작품. 호남 쪽 사찰에 이광사의 글씨가 많이 남아 있는 걸 보면 당시 꽤나 인기있는 명필이었을 텐데 추사 김정희의 평가는 완전 달랐다.
제주 유배 가는 길에 초의선사를 만나러 해남 대둔사(대흥사)에 들른 추사가 대웅보전 이광사 글씨 현판을 보고 화를 내면서 떼어내게 하고는 대신 자신이 대웅보전과 백설당 무량수각 현판 글씨를 써 준다.
그런데 추사는 제주 유배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대흥사에 들러 원래대로 이광사의 글씨 현판을 걸라고 했다는 것. 추사는 이광사의 글씨에 대해 “용필(用筆) 용묵(用墨)도 모른다”고 막말을 해댔으니 추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이광사야 저승에서도 황당했겠다. 추사는 제주도 유배 가서 고생좀 하고 나서야 그나마 생각이 좀 바뀌었나 보다.
백련사 사적비(보물 제 1396호) 지나 다산초당으로 향한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 가는 길은 남파랑길 83코스와 정약용의 남도유배길 2코스(사색과 명상의 다산오솔길) 일부가 된다.
부드러운 오솔길 그리고 동백나무 숲. 백련사 원구형 부도 1기 지나니 차밭.
동백 숲과 차밭 뒤로 강진만이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완만한 오르막 계단길 오르니 해월루와 만덕산 깃대봉 갈림길. 다산초당 0.6km(백련사 0.4km). 날이 너무 흐려 해월루는 가지 않고 바로 다산초당으로 향한다.
다산초당 다녀오는 길에 이곳 고개에서 만덕산 정상인 깃대봉으로 가서 백련사로 하산할 계획.
이 길은 백련사 주지였던 혜장스님(1772~1811)과 다산 정약용(1762~1836)이 교류하던 곳. 다산이 유배시절 가장 깊은 교분을 나누었던 사람이 바로 백련사 혜장스님.
유학자인 정약용이 천주교 세례를 받고(이후 배교했다고 하지만), 당시 유학자들이 그렇게 배척했던 불교 승려와 깊은 교분을 나누었다는 것은 그의 사고가 그 만큼 열려 있었던 것일까?
* 물론 일부겠지만 유생들이 절에 불지르고 불상을 파괴하는 걸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조광조가 득세하던 시절 유생들이 능침사찰이었던 흥천사 사리각에 불을 질러 중종이 처벌하려 했으나 사림들이 들고 일어나 처벌을 못 했을 정도로.
아니면 심심했던 유배생활의 양념 혹은 유학에 조예가 깊었던 혜장스님이라 잘 통해서? 어쨌든 두 사람은 열 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 가면서 엄청 친하게 지냈다.
동암(송풍루)을 먼저 만난다. 다산이 2천 여권 서책을 갖추고 집필에 몰두하고 손님을 맞던 곳으로 1975년 서암과 함께 복원한 것. 다산은 대부분 시간을 동암에 머물며 집필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런데 2천권의 장서라, 대단하다. 그 당시에 도서관도 아니고 그것도 유배생활을 하면서, 어쨌든 한자가 생기고 가장 많은 책을 썼다는 천재답다.
동암에서 조금 내려가면 연못(연지석가산) 옆에 다산초당. 다산초당은 다산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책을 썼던 곳으로 다산이 유배생활 18년 중 10년을 이곳에서 생활했다.
1957년 무너진 초당 자리에 다산초당을 복원하면서, 초가지붕 작은 초당이 정면 5칸 측면 2칸 팔작기와집으로 변했다.
다산(茶山)은 만덕산의 다른 이름으로 야생 차들이 자라 다산(茶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정약용이 다산 기슭에 자리를 잡으면서 ‘다산 사시는 분’ 이렇게 불리다 보니 정약용은 그의 호를 다산으로 했던 것.
서암은 집이 먼 제자들이 머물렀던 일종의 기숙사. 크기가 작아 한꺼번에 많은 제자를 두기에는 곤란했겠다.
다산초당 제1경 정석(다산이 쓰고 새긴 것). 제3경 다조는 차를 다리는 부뚜막으로 썼다고 한다
다산초당 마루에 앉아 한참 쉬다 다산이 혜장을 만나러 갔던 그 길을 따라 다시 백련사 방향으로 걷는다.
만덕산 깃대봉/해월루 갈림길(깃대봉 1.3km, 백련사 0.4km)에서 좌측 깃대봉 방향으로 들어선다. 시누대 숲길 지나 완만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길은 완만하게 이어지다 잠시 가파른 길 오르면 능선 갈림길. 능선 갈림길에서 정상까지 0.54km
능선에 올라서 우측 암봉에 오른다
아래 백련사와 강진만 풍경
바로 앞에 깃대봉이 보인다.
암봉에서 내려갔다 가파르게 다시 올라가면 만덕산 정상 정상 깃대봉. 해월루 갈림길에서 1.2km, 45분 소요.
정상에서 보는 조망
하산 길. 백련사 방향은 이정표 표시가 없다. 정상 직전 우측에 하산로가 보였다. 정상에서 내려서 남동쪽(강진만 바다 보면서) 백련사 방향 가파른 길을 내려간다.
부부 한 팀이 올라오길래 "백련사에서 올라오세요?" 물었더니 맞다면서 "조심하세요" 한다. 길이 가파른데다 미끄러워 조심하라는 얘기.
오늘 깃대봉 다녀가면서 이들 부부 말고는 다른 산객이 없었다. 다산초당은 사람들이 그리 많았는데...
길이 완만하게 변하더니 백련사 방향 이정표.
곧 백련사로 내려선다. 이곳에서 오르면 만덕산 최단코스 산행이 되는 것. 만경루 우측에 보이는 이정표 공양간 해우소 방향으로 가면 들머리 이정표가 있다.
백련사 주차장으로 돌아가 만덕산 산행을 마친다. 주차장에서 다산초당과 깃대봉 다녀오는데 4.2km, 백련사와 다산초당 관람시간 등 포함해 2시간 50분 소요.
이제 늦은 점심. '허영만의 백반기행 1회차(당신이 꿈꾸는 남도 백반, 전남 강진)'에서 소개했던 강진 백반집 '우리식당'으로 간다. 가까운 도암면 소재지에 있는 백반 집.
2인분 6만원 한정식을 먹었으니 백반이라 하긴 좀 그렇지만 어쨌든 강진 별미여행 마무리로 딱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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