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 백암봉 구간] 다시 넉넉한 덕유의 품에 안기다
* 산행지: 백두대간 백암봉 구간(경남 거창군 북상면 고제면, 전북 무주군 설천면 무풍면) - 신풍령(빼재 920m)~빼봉(1,039.3m)~갈미봉(1,210.5m)~대봉(1,263m)~지봉(1,342.2m)~귀봉(1,400m)~백암봉(송계삼거리, 1,503m)~동엽령(1,250m)~안성탐방지원센터
* 산행일:
* 산행경로 및 시간: 신풍령(빼재, 10:56)~빼봉(11:24)~갈미봉(12:02)~대봉(12:28~12:33)~달음재(12:52)~중식(13:08~13:28)~지봉(못봉,13:45)~지봉안부(13:56)~횡경재(14:15)~귀봉(14:52)~백암봉(15:24~15:35)~칠연폭포 갈림길(16:00)~동엽령(16:13~)~안성지구(17:50)
* 산행 시간 및 거리: 6시간 54분(중식 및 휴식 약 50분 포함), 이정표 기준 대간 13.2km, 하산 4.5km (총 17.7km)
지난 5월초 남덕유에 이어 다시 덕유의 너른 품으로 향한다. 크고 넉넉한 덕유는 오늘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무주와 거창을 잇는 37번 국도가 백두대간 주능선을 가로지르고 있는 신풍령(빼재)에서 오늘 산행은 시작된다. 빼재는 빼어나다고 하여 일명 수령(秀嶺), 혹은 옛날 산적들이 먹은 짐승 뼈가 많이 쌓여 뼈재라고 하던 것이 빼재로 변했다는데 이곳이 그렇게까지 험했을까? 빼재에서 여러 봉우리를 넘어 백암봉에서 동엽령, 동엽령에서 안성지구로 하산 계획. 여기 산악회 따라 대간산행을 하면서 매번 혼자였는데 오늘은 회사 유차장이 처음으로 동행한다.
<들머리 수령 - 표석 앞 임도를 따라 오른다>
덕유산 IC에서 거창 방향으로 진행 무주리조트 입구 삼거리를 지나 거창군에서 세운 백두대간 보호지역 안내 표석이 있는 신풍령(수령)에 도착 산행을 시작한다. 고갯마루에 수령이라고 새긴 표지석 앞 임도를 잠시 오르면 간이화장실이 있고 우측에 표지기가 보인다. 가파른 길을 오르면 등로는 철탑 좌측으로 이어지고 곧 대간 주능선으로 올라선다. 주능선 오른쪽이 덕유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국립공원 경계 표석이 간간이 보인다. 녹음이 짙어 가는 깊은 숲의 싱싱한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기분좋은 산행, 이런 기분도 일종의 중독이다.
다비드 드 브르통은 걷기예찬에서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 놓는 것이다’라는 말로 책을 시작하고 있다.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는 것. 실존까지는 몰라도 숲에서 걸으며 넉넉하고 순수한 감정에 몰입되고 대상을, 그 대상이 자연이든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상념이든, 관심과 사랑으로 볼 수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숲을 걸으며 느끼는 자연과의 교감, 삶에의 깊은 성찰 그것은 산행길에서의 또 하나의 축복이다.
<빼봉 이정표>
초반부터 경사가 만만치 않아서인지 일행들이 죽 줄을 서서 가는 분위기다. 유차장은 초반 속도가 답답한지 ‘계속 이렇게 줄을 서서 가느냐’고 묻는데 조금만 더 가면 서로 페이스가 다르니 선두와 후미 간격이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곧 삼각점과 이정표가 있는 빼봉(1039.3m)과 헬기장을 지난다. 완만한 길을 가다 다시 급한 길을 오르니 작은 정상석이 있는 갈미봉(1210.5m), 이정표에 신풍령 2.6km, 송계삼거리 8.4kmㄹ 되어 있으니 출발점인 신풍령에서 송계삼거리인 백암봉까지 11km의 거리.
갈미봉은 봉우리가 갈라져 있어 갈미봉인데 사방으로 숲이 우거져 두 개의 봉우리를 구분할 수 없다. 남쪽으로 호음산을 향해 뻗어 나간 지능선이 거창군 북상면과 조재면의 경계라고 한다. 조망도 없고 사진 한 장 찍고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계속 진행.
<갈미봉 이정표>
능선을 우회하는지 급경사 내리막길이 나오고 길은 다시 오르막길로 변한다. 오르내림을 반복하다 보니 대봉(1,263m)에 도착. 신풍령에서 1시간 반만에 3.6km를 왔다. 대봉에서 서쪽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장쾌하고 넉넉한 덕유 주능선 조망이 일품이다. 가까이 보이는 지봉부터 백암봉까지의 대간길, 그리고 덕유 향적봉부터 무룡산으로 달음질하는 주능선 산줄기들이 짓푸른 빛으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대봉(1263) 정상에서 우측(북) 투구봉(1274.7)을 향해 뻗어 나간 지능선이 무주군 설천면과 무풍면의 경계. 조망이 워낙 좋다 보니 모두들 탄성을 터트리고 사진 찍기 바쁘다. 정상에 핀 몇 송이 노오란 미나리아제비가 하늘하늘 눈길을 끌고 쥐오줌풀, 둥굴레는 지천이다. 처음 덕유산을 찾았을 때 동엽령 주변은 온통 원추리 꽃으로 산상화원을 이뤘는데 원추리는 조금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대봉 이정표 뒤로 백암봉과 남북으로 이어진 덕유 주능선>
<대봉에서 보는 조망 - 뒤 능선이 덕유 주능선>
<산행을 함께 한 유차장>
<쥐오줌풀이 한창>
대봉에서 서쪽으로 내리막길을 걸어 월음재로 향한다. 달음재(월음령)는 사거리 안부, 그리고 가파른 오르막 능선길이다.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리고 숲에는 분홍색 큰앵초가 여기저기 수줍게 피어 있다. 은은한 꽃향기가 주변을 감싸고 있어 보니 등로 위로 산라일락이 활짝 피었다. 산에서 라일락을 본 건 오늘이 처음. 조금 더 오르니 일행들이 식사 중이고 유차장이 기다리고 있다. 옆에 자리를 펴고 점심식사. 오늘은 동행이 있어 밥 먹는 것도 20분씩이나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낸다.
<월음령>
<큰앵초도...>
점심을 먹으며 너무 여유를 부렸는지 일행들은 모두 출발하고 우리가 맨 꼴찌다. 부리나케 경사가 급한 길을 따라 지봉으로 향한다. 병꽃나무 꽃이 활짝 핀 좁은 능선길을 돌아서니 지봉(1342.2m), 일명 못봉이다. 정상 부근에 습지가 있어 못봉일 텐데 주변을 둘러봐도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이곳 역시 조망이 좋아 덕유의 맹주 향적봉부터 서남쪽 무룡산과 남덕유로 향하는 능선이 수려하게 뻗어 있다. 지봉 바로 앞에 있는 헬기장에서의 환상적인 조망도 발길을 잡는다. 이제부터 내리막길. 이정표가 있는 지봉 안부에서 잠시 휴식. 잠시 편한 길을 지나니 계속 급한 오르막길이다. 그래도 온 몸이 푸르게 물들 것 같은 싱싱한 활엽수림이 황홀할 정도로 예쁘고 아직 조금씩 남은 철쭉도 사랑스럽다. 송계사 갈림길 삼거리를 지나니 귀봉(1,400m)이 나온다.
<못봉(지봉) 이정표와 뒤로 오늘 가는 대간길>
<지봉지나 헬기장 조망도 시원하다>
<귀봉에서의 조망>
산죽 밭을 지나고 꽃쥐손이가 예쁘게 핀 오르막길을 치고 오르니 백암봉(1,503m). 좌측으로 동엽령 가는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우측 가깝게 솟은 봉우리가 중봉일 것, 향적봉은 그 뒤에 있다. 작은 바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백암봉에서 한참 쉬면서 집에서 얼려온 맥주가 이제야 녹아 한 모금 목을 적신다. 백암봉 주변으로 꽃쥐손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귀여운 미나리아제비도, 병꽃나무도 철쭉도 모습을 드러낸다.
<백암봉 이정표>
<백암봉에서 향적봉 가는 길 - 중봉과 그 뒤로 향적봉이>
<꽃쥐손이가 백암봉 주변에 군락을 이루고>
동엽령은 좌측 내리막길, 2.2km의 거리. 동엽령 가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길에 랭보의 표현대로 난쟁이 숲인 관목과 초원 지대, 그리고 바위지대가 펼쳐져 사방을 조망하며 걷는 기분이 최상이다. 길도 좋고 풍광도 수려하고 혼자 걷기에는 아까운 길. 한참 내려오니 칠연폭포 갈림길, 그런데 오래된 이정표 주변은 미나리아제비가 뒤덮고 있고 폭포 방향은 등로를 막아 놓았다.
<동엽령 가는 길 - 관목과 초원, 바위 지대>
<이제는 길을 막아놓은 칠연폭포 갈림길>
<노란 미나리아제비가 너무도 곱다>
고도를 제법 낮추니 조망대가 있는 동엽령(1,250m). 동엽령은 겨울낙엽 고개일 텐데 무성한 숲과는 거리가 먼 초원지대. 그러면 이곳도 오래 전에는 깊은 숲이었을까? 전에 한여름 왔을 때는 노란 원추리가 산상화원을 이뤘는데 오늘은 작은 미나리아제비가 한창이다. 동북 방향으로 오늘 걸어온 대간 능선길이 길게 뻗어 있어 조망이 시원하다. 지나온 길을 보면서 느끼는 뿌듯한 감정, 내 삶도 그렇게 마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동엽령에서 한참 노닥거리다가 우측 안성지구 방향으로 긴 하산길. 발이 빠른 유 차장은 앞서 오면서 우측 하산로를 못보고 동엽령을 그냥 지나쳐 갈 뻔 했단다. 동엽령에서 안성탐방지원센터까지는 4.5km. 이정료를 기준으로 하면 신풍령에서 백암봉까지 11km, 백암봉에서 동엽령 2.2km, 동엽령에서 안성지구까지 4.5km이니 오늘 산행거리는 17.7km.
<동엽령이 이정표>
<조망대 뒤로 보이는 오늘 걸은 대간길>
계속되는 내리막길을 따르니 어느새 우측에 계곡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계곡 가에 이름 모를 흰색의 야생화들이 지천. 길은 돌길에 경사도 제법 급하고 피곤한 발에 더 부담을 준다. 어느새 우측으로 계곡이 자리하고 있고 작은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한참 더 내려와 작은 소와 폭을 이루고 있는 계곡을 잠시 구경하다 내려오니 칠연폭포 갈림길. 오늘은 꽃들과의 시절인연이 큰지 주변엔 함박꽃나무가 가지마다 기품 있는 순백의 꽃을 달고 있다.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려 폭포 구경은 생략하고 그대로 하산길.
<동엽령에서 안성지구 하산로>
<칠연폭포 갈림길 이정표>
한참 도로를 내려오다 보니 모자가 없다. 아까 계곡에서 사진 찍으며 떨어트린 것. 할 수 없이 다시 올라가 모자 회수, 20분 이상 손해 보았다. 국립공원 안성지구 주차장에 도착, 산행 예상시간이 6시간이었는데 쉬는 시간이 너무 많았고 모자 덕분에 한 시간 가까이 더 걸렸다. 산악회 버스를 타고 조금 더 내려가서 저녁부터 먹고 고추나무 하얀 꽃이 활짝 핀 개울에 가서 알탕, 그리곤 귀경길에 올라 하루 산행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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