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정맥 산행/백두대간 산행

지리산(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①

카페인1112 2005. 8. 27. 22:00

장엄한 지리 주능선을 따라 - 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

 

* 산행지: 지리산(智異山 , 1,915m) - 경남 함양,산청,하동, 전북 남원, 전남 구례

* 산행일: 2005 8 12~14(),

* 산행거리 : 성삼재 - 28.1km - 천왕봉 - 5.4km - 중산리 (33.5km)

* 산행 경로 시간 

    <8 13>

성삼재(4:05)~노고단(4:57)~피아골삼거리(6:15)~임걸령(6:23)~삼도봉(7:29)~

개지(8:12)~토끼봉(8:47)~연하천대비소(10:08~11:20)~숲에서 휴식

(11:30~12:05)~벽소령대비소(13:48~14:40)~선비샘(15:38)~칠선봉(16:39)~영신

(17:38)~세석대피소(17:50) <13시간 45, 휴식시간 등 포함> 

 <8 14>

세석(6:15)~장터목대피소(7:42)~제석봉(8:10)~천왕봉(8:47~9:08)~망바위(10:47)

~중산리(11:40) <5시간 25>

 

 <국립공원 자료>

 

 어머니의 산 지리산, 그 포근하면서도 장엄한 세계로 처음 발을 내딛는다. 지리산의 옛 이름이 두류산(頭流山)이니 백두대간이 시작되는 백두산에서 줄기가 뻗어 나왔다는 의미. 우리 산하의 시작이자 끝이 된다.

 

수없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과 비경들, 그리고 그 속에서 숨쉬는 민초들의 애환과 생애까지도 마음껏 느껴 보리라. 내가 1백리 주능선을 모두 밟지 못하고 그 비경을 다 경험하지 못하겠지만 그 장엄한 세계와 어머니 품 속 같다는 푸근한 세계에 잠시나마 몸 담을 수 있다는 것, 그 기대만으로도 설레고 기쁘다.

게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지리산인데, 3일간의 여정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난 산행 내내 이 끝없는 물음과 함께 할 것이다.

 

12일(금) 밤, 따뜻한 마음을 마음 속에 품으며 집결지로 향한다. 제행무상,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은 없으므로 언젠가 이런 그립다는 감정도 변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순간이 소중한 것. 그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양재동 서초구민회관 앞에서 같이 가는 동료들을 만나 산악회 버스를 한참 기다린다. 모두들 기대 반 걱정 반. 근데 비박용 침낭과 매트리스 탓인지 우리 일행 배낭이 제일 크다. 어쩔 수 없는 초보들. 하지만 처음 경험하는 지리산 종주를 위해 잘 아는 사람한테 소개 받고 배낭부터 침낭, 매트리스를 새로 샀으니 일단 사용은 해야 한다. 버스에 오르니 만석, 빈 자리 없이 꽉 찼다.

 

간단한 산행지 설명이 있고 나서 곧 버스 불은 꺼졌는데 12 지나도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지고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불편한 잠자리 탓인가, 아님 산행에 대한 기대감이 넘쳐서인가? 버스는 금산 인삼랜드휴게소에서 잠시 멈췄다가 출발.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 3시 반 들머리인 성삼재 아래에 도착한다.

 

  성삼재로 오르기 직전 조그만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는데 입이 깔깔해 먹는 둥 마는 둥이다. 잠이 부족해 멍한 상태라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새벽 4, 오늘 장도의 들머리인 성삼재 매표소에 도착. 예상외로 등산객들이 여기저기 많이 보인다. 옛 삼한시대 성이 다른 세 명의 장군이 지켰던 곳이라 하여 성삼재,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이리라.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넓은 등로를 따라 오른다. 길은 걷기 좋은 완만한 길,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아마 노고단 입구까지는 이런 길이 계속될 것이다. 산악회에서 나눠준 안내문에는 오늘 종주거리가 50km로 되어 있는데 실제보다는 과장된 것 같다. (나중 자료를 확인하니 33.5km)

 

어둠 속 옆에서 울리는 개울물 소리만 요란하다. 초반 여유 있게 걷다가 서서히 속도를 높여 선두로 치고 나갔다. 점차 홀로 걷는 걸음. 뒤를 보니 헤드랜턴 불빛만 어둠 속에 반짝인다. 멀리서 들리는 소쩍 소쩍 소쩍새 울음소리. 반복되는 울음소리가 갑자기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듯, 마음 한 구석이 아련하고 그리움이 물결처럼 밀려든다. 허무감도 외로움도 아닌 무엇을 향한 그리움일까?

 

어둠 속 노고단대피소를 지나 가파른 길을 오르니 노고단(1,507m). 나름 의미가 있는 곳이지만 그냥 어둠 속 봉우리일 뿐 그냥 지나치는 길이다. 이정표를 보니 천왕봉까지 25.5km 남았다. 이제 등로는 좁은 산길, 산길 주변 어둠 속에 빛나는 들꽃들이 눈길을 끈다. 수줍은 모싯대, 둥근이질풀, 달맞이꽃, 화사한 동자꽃까지 산상화원이다. 이들 들꽃들의 축제는 지리산 산행 내내 이어져 홀로 걷는 산길에도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조금씩 아침이 열리는지 사위가 분간되기 시작한다.

 

임걸령으로 향하는데 아침이 오기 직전의 분위기가 저절로 느껴진다. 새벽 산이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다웠던가? 고요한 푸르름의 정취, 안온한 분위기 그 속에서 그 동안 느껴 보지 못했던 감동이 온 몸으로 전해진다. 아름답고 편안하다.

 

새벽 이슬을 맞으며 조금 더 걸으니 동이 터오기 시작한다. 푸른 숲 위에 떠오르는 붉은 햇살이 고요 속의 숲을 깨우고, 나뭇가지 사이로 일렁이는 황금 빛살이 황홀하게 아름답다. 지금 이 길을 걷지 않았다면 이 아름다움은 함께 할 수 없었겠지? 그래서 순간순간이 더 없이 소중한 것. 이 행복한 순간을 당신과 함께 합니다.

 

아침이 오면서 이제 지리의 장엄한 세계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준다. 피아골삼거리를 지나 아늑한 임걸령에 도착. 지리 주능선은 군데군데 샘이 있어 목을 축이기 좋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지리산의 품으로 스며들었는지도 모른다. 임걸령 샘은 해발고도가 높은 곳(1,320m)에 있는 데도 의외로 수량이 많고 맛이 달다. 지대가 아늑해서인지 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런데 아이한테 빌려온 디카가 작동이 안 된다. 하지만 사진이 없으면 어떠리, 마음에 담아가면 될 것을.

 

임걸령에서 잠시 쉬다가 삼도봉으로 출발. 완만한 오르내림이 계속된다. 도중 왼쪽으로 보이는 거대한 반야봉, 지리 2봉이다. 하지만 이번 산행에서 반야봉까지 다녀올 여유는 없다. 이제는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하며 땀이 나기 시작한다.

삼도봉(1,550m)에 도착해 조망을 즐기며 시원한 바람을 잠시 느낀다. 삼도봉은 전북 남원, 전남 구례, 경남 하동에 걸쳐 있어 삼도봉. 앞에 토끼봉이 가깝게 보이고 그 뒤로는 천왕봉과 좌우로 이어진 긴 산줄기들이 끝없이 뻗어 있다. 주변 조망도 좋고 바람도 시원해 한참 쉬다가 출발. 이제 앞에 보이는 동쪽 토끼봉을 향해 출발,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화개재 그리곤 다시 가파른 토끼봉 오르막길이다.

 

계속 혼자 걷는 길, 일행들은 어느새 뒤로 처져 보이지 않는다. 일단 연하천산장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출발. 역시 계속된 오르내림으로 걷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내 페이스대로 걸으면 되는 것. 내리막 길을 내려와 연하천에 도착하니 작은 산장과 역시 수량이 좋은 샘이 보인다.

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갈 생각으로 일행들을 기다리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한 시간 가깝게 기다리니 그제서야 도착하는데 벌써 많이 지친 표정들이다. 벌써 지치면 내일까지 어떻게 걸을지 걱정스럽다. 거기다 내가 회사 직원들에게 제의해 동행하게 된 것인데, 나중 미안해 지면 어쩌지?

 

물을 떠 라면을 끓여 꿀맛 같은 점심을 먹고 한참 쉬다가 출발. 그리고 조금 걷다 숲에 매트리스를 펴고 누워 30분 정도 숲 기운을 느끼며 쉬다가 간다. 오늘 목표는 칠선봉을 지나 세석산장까지. 대피소에서 숙박하게 되어 있었는데 예상대로 산악회에서는 예약을 못했다 한다. 비박 준비를 갖추고 왔으니 걱정할 것은 없겠다만.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단체 산행객들 틈에 끼어 가는데 이들은 마주치는 사람에게 계속 인사를 하면서 간다. 착한 학생들, 게다 그리 인사를 하면서 가니 오히려 덜 힘들겠다. 요즘 아이들이 뛰어난 지적 능력에 비해 체력이나 정신력에서 나약해져 가는 걸 생각하면 누가 계획했는지 훌륭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을 추월해 갔다가 잠시 쉬는 사이 다시 나를 추월해 간다. 즉 줄 맞춰 가는 그 아이들이 나를 추월해 간다는 건 내가 그만큼 지쳤다는 것. 게다 너무 덥다.

 

거친 등로에 무더운 날씨로 힘은 들지만 사방으로 펼쳐지는 산줄기들과 푸른 숲의 분위기는 그냥 스치고 지나가기엔 너무도 아쉬울 정도의 풍광이다. 형제봉 직전 전망대에 서니 형제봉의 기암기석들이 수려하게 펼쳐지고 그 좌측으로 벽소령대비소가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가파른 형제봉을 내려서니 커다란 바위가 길 옆에 서 있다. 이것이 형제바위일까? 내리막 길을 지나 바위 사이를 지나니 너덜 길이 이어진다. 이제 곧 벽소령.

 

성삼재에서 벽소령까지 17km를 걸었다. 이번 산행 거리가 지리 주능선(성삼재에서 천왕봉) 28.1km, 천왕봉에서 중산리까지 5.4km, 33.5km이니 반 정도를 걸은 것. 일행들과 같이 가려고 벽소령에서 한 시간 정도 쉬다 간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휴식이 너무 길다. 오후 2 40.

 

벽소령을 지나니 잠시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완만한 산죽지대를 지나 봉우리 하나를 넘으니 선비샘이 나온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쉬면서 일행들을 기다리는데 역시 소식이 없다. 일단 세석에 먼저 도착해 저녁 준비를 할 생각으로 그냥 출발. 칠선봉(1,558m)을 지나는데 같이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쉬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우리만 늦은 게 아니었네. 세석대피소는 2.1km 남았으니 이제 지척이다.

 

앞에 푸른 소나무와 회색 빛 바위, 그 뒤로 희미한 연봉들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바위 전망대를 지나는데 앞에 짙은 구름이 몰려든다. 가파른 철 계단을 오르니 큰 바위가 있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한 직벽이다. 푸른 구상나무와 고사목, 암벽이 어우러져 선경을 연출한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광들을 즐기며 걷다 보니 어느새 영신봉(1,6512m)을 지나 대피소가 있는 세석에 도착한다. 새벽 4 5에 출발해 13시간 45분이나 걸렸지만 쉬는 시간이 너무 많았으니 널널산행이다. 저녁식사와 비박 장소를 잡으려 하는데 먼저 온 사람들이 대피소 주변 좋은 자리는 모두 차지해 버렸다.

 

아래 넓은 헬기장으로 내려가 자리를 편다. 헬기장 옆에 보니 졸졸 흐르는 물길이 있어 땀으로 목욕한 몸을 대충 닦고 돌아와 물부터 끓이며 일행들을 기다린다. 대피소 측에서 헬기장은 비상시 사용하는 시설이니 자리를 비우라고 안내 방송을 하지만 헬기장을 꽉 채운 등산객들을 이제 와서 어찌할 것인가?

조금 후 일행들이 돌아와 라면을 끓여 저녁을 먹고 아까 아침식사 집에서 산 술 한 병을 꺼내 하루의 피로를 푼다. 그리곤 자리를 펴고 눕는다. 내일 일정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