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가을빛 대간 길을 원없이 걸었네
- 대관령에서 진고개까지
* 산행지: 대관령에서 진고개까지의 백두대간 길
<대관령~선자령(1,157m)~곤신봉(1,131m)~소황병산(1,328m)~노인봉(1,338m)~진고개(960m)>
* 산행일자: 2006년 9월 30일(토) 약간 흐림, 안개 많은 날
* 산행인원: 5명 (마음이 아름다웠던 사람들)
* 산행경로 및 시간
(구)대관령휴게소 출발(09:00)~선자령 갈림길(9:30)~새봉(9:40~45)~선자령(10;20~30)~보현사갈림길(10:38)~대공산 곤신봉(11:12~17)~동해전망대(11:38, 중식 후 12:30 출발)~매봉(출입금지 표시판,13:04)~노송 아래 휴식(13:18~40)~소황병산(3:08~20)~대피소 지나 휴식(30분)~노인봉휴게소(3:30~40)~노인봉(4:47~57)~진고개휴게소(18:00)
* 교통
승용차 이용, 영동고속도로 횡계IC 통과 후 우회전 대관령휴게소 도착
진고개에서 진부택시 콜 대관령휴게소까지 35,000원
* 산행거리 및 시간:
도상거리 25.8Km(표지판 기준)
산행시간 9시간(중식/휴식 3시간 포함, 초보들 산행이라 널널산행, 보통은 휴식 포함 6~7시간)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 푸른 초원의 대간길과 고운 가을 빛 속에 뛰어들고 싶었다. 아침 6시 천호역에서 5명이 만나 길을 떠난다. 떠나는 길은 진한 안개로 온통 회색빛, 마치 흑백영화의 장면이 펼쳐지는 것처럼 산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다. 도중 간단한 아침식사 후 횡계IC에서 빠져 풍력발전기가 요란한 대관령 구휴게소(해발 832m)에 9시 도착한다. 안개는 걷혔지만 흐린 날씨, 산행하기엔 오히려 편할 게다. 휴게소 옆 도로에는 오늘의 가을꽃 향연을 예고하는 듯 붉은 토끼풀과 쑥부쟁이가 여기저기 만발해 가을 정취를 마음껏 느끼게 한다.
오늘 걸을 대관령에서 진고개까지의 대간 길은 강릉시와 평창군의 경계지역, 푸른 초원지대가 꿈처럼 펼쳐지고 이국적인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곳. 국사성황당 표지석 앞에서 산행 출발을 신고하는 기념사진을 짝은 후 선자령으로 출발. 선자령은 지난 겨울 눈길을 걸었던 곳. 초입은 넓은 포장도로이고 곧 나타나는 이정표는 선자령까지 4.7Km, 휴게소 0.3Km. 휴게소에서 선자령까지 5Km의 거리이니 가파른 길도 거의 없고 가벼운 산책 코스로는 딱 알맞은 곳이다.
주목 식재지를 지나 선자령으로 향하는 길은 초가을 야생화들이 만발, 어수리, 쑥부쟁이, 엉겅퀴, 들깨풀에 청순한 구절초는 지천이다. 들꽃들의 모습도 봄철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봄철에 새 생명의 생기발랄한 활력을 느낀다면 가을은 무언가 짙은 허무와 덧없는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오늘은 이 그리움을 고운 가을 빛과 함께 마음껏 즐기리라. 근처 성황당에서 바라 소리가 요란하니 누군가 굿을 하나보다. 이곳 범일국사를 모신 국사성황당은 영험이 많고 산신각에는 김유신 장군을 모셨다는데, 고려군이 후백제와 싸울 때 꿈에 나타나 이길 수 있도록 도와 주어 그 때부터 산신으로 모신다고 한다.
산행 시작한지 30분 만에 백두대간 안내도가 있는 갈림길 도착(우측 항공무선표지국), 좌측 산길을 따라 선자령 방향으로 접어 든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길이다. 그리 가파르지 않은 오름길을 조금 가니 곧 새봉(선자령까지 2.5Km)이다. 전망대에서는 멀리 동해 바다가 흐릿하게 보인다. 이제부터 가는 길은 참나무와 물푸레나무가 무성한 숲길, 지난 겨울 깊게 쌓인 눈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던 참나무 숲은 이제 낙엽이 쌓여 고고하고 그윽한 정취를 풍긴다.
30분 정도 더 진행하니 선자령까지 990m 표지판, 거대한 풍력 발전기들이 여기저기 서 있고 주변은 이미 가을빛으로 조금씩 물들고 있다. 멀리서 보면 낭만적으로 보이는 풍력발전기는 가까이서 보면 위압감을 주는 거대한 괴물일 뿐이다. 넓은 초지 경계를 따라 가는 길. 조금 더 진행하여 표지판(선자령까지 0.4Km)이 있는 풀밭에서 20분간 여유있는 휴식. 주변엔 삼양목장 초지가 시원스렇게 펼쳐진다. 하늘과 맛닿은 푸른 초지의 풍광들이 시원하고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구릉들과 군데군데 가을 빛으로 물드는 숲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주변 정취를 감상하며 느긋한 휴식을 취하는데 오늘 산행 스타일이 이렇게 될 것 같다. 유유자적 마음껏 쉬고 끝없는 대화 등
<선자령 가기 전 푸른 하늘과 풍력발전기 모습>
산행 시작한지 1시간20분이 지나 선자령에 도착한다. 지난 겨울 눈 속의 선자령은 한없이 포근했는데 오늘은 주변 초지들이 시원하기만 하다. '선자령(仙子嶺)'은 계곡이 너무 아름다워 선녀들이 자식들과 함께 내려와 노닐던 곳이라는 전설에서 유래한다고 하는데 어느 계곡을 말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선자령 표지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출발, 이제 다음 목적지는 곤신봉(2.7Km 거리)이다. 작년 겨울엔 단체 등산객들이 꽤 많았는데 오늘 선자령에는 대간 종주 중인 한 사람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어디까지 가냐는 질문에 목표는 없고 가는 데까지 간다고 한다. 허긴 그런 유유자적한 산행이 훨씬 더 즐거울 것 같고 산에서가지 아둥바둥 목표를 잡고 발버둥칠 필요까지야 있을까?
선자령부터 대간 길은 잠시 숲을 거쳐 바로 넓은 임도로 내려간다. 곧 보현사 갈림길(우 보현사 방향 하산로)을 지나고 수시로 임도와 숲길을 번갈아 들랑날랑한다. 좌측은 목장 초원지대 우측은 대간 능선인 숲, 어쩌다 대간 길이 온통 임도로 바뀐 것일까. 멀리 흐릿하게 시설물이 있는 황병산과 소황병산이 보인다. 대공산 곤신봉(1,127m) 300m 표지판을 보고 임도를 따라 올라가니 전에 선자령 표시석이 있었다는 곤신봉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임도 옆에 꼭 구릉지대처럼 남아 있는 암릉이 아마 곤신봉이 아닐까 생각한다. 곤신봉에 올라 주변을 조망하다 다시 임도를 따라 이제는 동해전망대로 출발.
<대공산 곤신봉 - 주변은 온통 초지>
초지 옆 임도를 따라 걷다 보니 동해전망대 표시(동해전망대 400M, 선자령 4Km, 정문 3.6Km) 가 나오고 곧 간이매점이 있고 오가는 공사차량들이 분주한 동해전망대에 도착한다. 요즘 관광명소로 워낙 유명해서일까 구경 온 사람들과 차량들이 분주하다. 날이 흐려서 동해 전망은 별로이고 주변 초지들만 시원하다. 아직 12시가 되지 않았지만 점심식사를 하고 출발하기로 결정. 풀밭에 자리를 잡고 각자 배낭에서 먹을거리를 꺼내니 복분자주에 후식으로 과일까지 풍성하다.
전망대 앞 쪽 임도를 따라 다시 출발(전망대에서 소황병산 6.5km)하는데 등산객은 한 명도 볼 수가 없다. 더운 임도를 계속 따라가 보니 다시 우측 숲으로 표지기가 나오는데 이번에도 다시 임도와 합류될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좌측 임도로 갔더니 등로와 점점 더 이별, 할 수 없이 산 비탈을 치고 오른다. 제법 경사가 있는 숲길. 정상 등로와 합류하여 고즈넉한 숲길을 한참 가다보니 매봉 출입금지 표시판이 있다. 아마 이곳이 매봉일 것 같다. 그런데 출입금지를 어기면 과태료 부과... 대간 종주하는 사람들을 모두 범법자로 만들 게 아니라 자연도 지키면서 산행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매봉을 지나 숲으로 들어서니 이제부터 기대 이상의 산상화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쑥부쟁이와 구절초의 향연, 그 고운 자태와 청초함, 순결함을 다른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꽃과 노송이 우거진 경치가 기가 막힌 장소가 나타나 노송 아래 20분간이나 휴식. 쉬고 있는데 등산객 1명이 다가오더니 '별 이상 없느냐'고 묻는다. 벌금 20만원이 뭔지. 환상적인 꽃길은 등로를 따라 한참 이어지더니 점점 빽빽한 원시림의 깊은 숲으로 분위기가 바뀐다. 그런데 평소 산행 경험이 별로 없는 일행 한 사람은 다리에 무리가 오는지 자꾸 뒤로 처져 걱정스럽게 한다.
<그 숨막힐듯 아름다웠던 산구절초 군락지>
가을 숲, 주변 단풍이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아니 아름답다기보다 은은하게 그냥 고운 가을 빛이다. 그 고운 가을 숲을 조금 더 지나니 물소리 그리고 개울이 나타난다. 오늘 유일하게 만나는 물소리다. 계곡 옆 공터에서 한참 후미를 기다리며 휴식. 단풍이 아름다워 사진을 많이 찍었다.
<저 고운 가을 숲길을 원 없이 걷는다>
개울이 있는 쉼터에는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갈림길을 저울질하다 직진하는 길을 포기하고 좌측길로 결정, 나중 길이 합쳐지므로 어느 쪽이로 가든 상관없다. 주변 단풍은 제법 고운데 길은 급한 오름길, 오늘 산행에서는 드물게 만나는 급경사길을 올라 능선에서 또 휴식 그리고 좌측 방향으로 진행하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넓은 초원지대가 나타난다. 앞에 펼쳐진 초원 저쪽에 표지판이 있어 초지를 가르고 가보니 소황병산 안내판(1,328m)이다.
이 높은 산을 초지로 가꿨으니 정상부라도 숲으로 남겨 둘 수 없었을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소황병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끝없이 넓은 초지는 그 푸르름으로 가슴이 후련할 정도이고 멀리 주문진 바다까지 시원하다. 바로 옆에는 가을 빛으로 물드는 시설물이 있는 황병산이 보이고 오늘 걸어 온 긴 대간 길이 아득하다. 일행들은 모두 '우리가 저 먼 길을 걸어왔다는 거야?'하며 걸어 온 길을 돌아보니 정말 뿌듯하단다. 내 인생도 그렇게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서 만족하고 뿌듯하게 느낄 수 있을까! 난 사람은 못되어도 내 삶에 충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래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인생의 내리막길로 접어든 50이 다 된 나이, 이제부터 걷는 걸음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산행 동료들, 사진 찍은 신차장만 빠졌네>
소황병산에서 이제 노인봉(3.5km)으로 향해 가는 길,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모두가 초행인지라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진행 방향 쪽으로 내리막길을 발견, 삼거리를 지나면서 고도 1,000m 를 오르내리면서 걷는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오늘 걷는 대간 길은 대부분 고지 1000m 전후를 오르내리며 걷는 기분 좋은 길이다. 3시40분 대피소 안내판이 나타나고 가을 고운 빛 속을 계속 걷는 행복한 길이 계속 이어진다. 다리에 무리가 오는 일행을 기다리며 쉬는데 갑자기 안개가 숲속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숲 속 기온이 내려가서일까, 안개와 함께 음산한 기운이 돈다. 다시 출발, 노인봉 산장 못미쳐 전망이 좋은 전망바위가 있는데 주변은 키가 작은 관목들이다. 좁은 등로를 지나면서 주변 구경하다가 바위에 무릎을 세게 부딪친다. 이런..
<가을 숲과 안개>
3시30분, 노인봉 산장(대피소)에서 다시 10분 정도 휴식하고 노인봉으로 향한다. 노인봉까지는 300m (진고개 4.2km)의 거리로 잠깐 올라서면 된다. 노인봉은 전에 3번이나 왔던 곳. 2분 정도 올라가니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좌측은 진고개 방향이고 우측이 노인봉이다.
암릉으로 이루어진 노인봉은 멀리서 보면 백발노인의 모습이라고 해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주변 전망이 그림 같이 아름다운 곳이다. 고운 가을빛으로 물든 산줄기들이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고, 가을 단풍과 푸른 상록수들, 암릉이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화려한 외출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노인봉에서 거의 10분 가까이 쉬다가 이제부터는 하산길이다. 잠시 평탄한 길이 나오더니 이제는 계속 급경사길이다. 예전 진고개에서 가볍게 올라온 것으로 기억했는데 워낙 급경사라 힘들게 내려간다.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등산객이라면 몰라도 옷차림이 전혀 아닌 남녀도 있는데 무얼하러 가는 걸까.
예전 고냉지 채소를 가꿨던 밭에는 가시오가피나무가 잔뜩 심어져 있다. 밭을 지나 고요한 숲길을 내려오니 주변엔 온통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만발해 있다. 그래 오늘 예쁜 너희들 때문에 정말 힘들지 않게 즐겁게 산행했고 행복했단다. 들꽃들을 보면서 한참 여유를 부리다 보니 6시가 다 되어 진고개휴게소에 도착 오늘 산행을 마친다.
식사와 휴식시간이 3시간 가까이 된 널널 산행의 진수, 게다 그 숨막힐듯 아름답던 가을의 대간길을 언제 다시 걷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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