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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한국공원)

카페인1112 2011. 9. 21. 16:54

[터키 여행]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한국공원) - 8월 6일(토)

 

공갈빵으로 점심을 먹고 터키 수도 앙카라를 향해 동쪽으로 달린다. 앙카라까지는 버스로 6시간 걸리는 454km 거리. 이런 지루한 시간 단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중 여행 소감을 표현할 때 “잠깐 구경하고, 지루하게 버스 타고의 반복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한반도의 3.5배나 되는 넓은 땅을 군데군데 돌아보는 여정이니....

 

앙카라는 새로 만든 도시라 볼 것이 거의 없다. 단지 카파도키아로 가는 중간 지점일 뿐. 이번 여행은 이스탄불을 기점으로 동쪽 아나톨리아 고원의 중심지역인 카파도키아를 보고 다시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파묵칼레, 에페스, 아이발륵을 거쳐 이스탄불로 돌아온다. 터키 서부지역을 대충 훑어 보는 정도에 불과.

 

 

<점심을 먹은 식당과 공갈빵>

 

 

 

 

강태공들이 보이는 갈라타이 다리를 건너니 이스탄불 신시가지,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보스포러스 대교를 건너 아시아 땅으로 넘어간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너는 이 다리는 1973년 건설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1,074m)였다고 한다.

 

유럽에서 아시아로 갈 때는 다리 통행료를 받고 반대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갈 때는 통행료가 없다. 통행료를 한번만 받는다는 의미도 있으나 아무래도 아시아 거주인들이 가난해 일종의 배려를 한 것이라고.

 

 

                             <이스탄불 구시가지에서 신시가지로 가는 갈라타이 다리의 강태공들>

 

 

<보스포러스 해협의 보스포러스 대교, 그 건너가 아시아>

 

 

도중 잠깐 들른 휴게소, 우선 과일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일행들은 여행 첫날이다 보니 관심은 가도 어찌 사야 할지 부담스러워 구경만 하고 있다. 체리와 살구,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은 개암을 골라 들고 계산대로 간다.

 

달러,유로,리라 뭐든 계산 가능. 달고 싱싱한 체리 1kg에 10리라, 살구 5리라. 터키 1리라는 우리 돈으로 630~650원이고 1불에 1.5리라, 1유로에 2리라. 그런데 아이스콘은 2.5리라로 1,600원 수준.

 

 

 

<휴게소 뒤 호수가 보이고>

 

 

 

 

 

 

농업국가 터키는 저렴한 농산품 가격에 비해 공산품 가격은 우리보다 훨씬 비싸다. 휘발유도 리터당 2,800~3,200원 수준이니 차 굴리기가 쉽지 않겠다. 카파도키아 지역 등을 다니며 끝이 보이지 않는 그들의 넓은 평원이 너무도 부러웠다. 주로 밀밭이나 목화밭, 그리고 올리브, 체리 같은 과수원들.

 

 

                               <앙카라 가는 길 - 고속도로 주변 풍광이 역시 이국적?>

 

 

<이런 구릉도 밀밭> 

 

 

늦은 시간 앙카라에 도착하여 세르가호텔에 여장을 푼다. 호텔을 나와 주변을 잠시 둘러봤지만 그냥 서울과 비슷한 도시. 배낭여행 도사인 친구는 짜인 대로만 다니지 말고 밤에라도 자유롭게 도시 구경을 하라고 권했지만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침 식사, 뷔페다. 터키인들은 아침을 주로 빵과 차이, 치즈를 먹는다고 한다. 중식은 콩으로 만든 수프와 오이드레싱 샐러드, 메인 요리로는 밥. 터키인 가이드들 몇 명이 모여 아침식사. 지금은 라마단 기간. 그런데 터키인들 중에 금식을 지키는 사람은 4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긴 전에 들은 얘기. 아랍인들이 라마단 기간인데도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을 먹더란다. 의아하게 생각하니 그들 대답. “아. 하늘에서는 괜찮아요” 뭐든 지킨다는 것은 불편하기도 한 것.

 

가이드들이 식당에서 만나 서로 인사를 하는데 그들의 인사법은 양 볼을 번갈아 대는 것. 남녀 간에도 마찬가지. 남자 가이드들은 서로 포옹을 하고 양볼을 댄다.

 

 

 

앙카라에서는 한국전 참전기념비가 있는 한국공원만 들르고 바로 카파도키아 행이다.

한국공원은 6.25전쟁에 참전했던 터키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작은 공원. 석가탑을 모방해 만들었다는 위령탑이 있고 그 좌우로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먼 이국의 땅에서 전사한 700명이 넘는 터키 군인들, 이장을 금하는 그들의 관습에 따라 유해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부산 유엔 묘역에 묻히게 된다. 그 묘역에서 흙을 갖고 와 위령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터키인들은 한국을 혈맹, 형제의 나라라고 말한다. 6.25전쟁 때 피를 나눈 형제라는 것. 당시 터키인들은   한국에 대해 잘 몰랐으나 나토 가입을 위해, 자신들의 국가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무려 15,000명이 먼 한국 땅으로 건너온다. 중공군 1,900명을 사살, 대승을 거둔 김량장리 전투가 대표적인 그들의 전적.

 

터키 젊은이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으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들과 그들을 기다렸던 가족들의 슬픔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으리라. 방명록에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참배한다”는 글을 남겼다.

 

 

 

 

 

 

 

 

터키인들의 한국에 대한 형제애는 잘 알려진 사실.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인 심판의 오심으로 아르헨티나 전에서 패하며 일시적으로 반한 감정이 크게 생겼으나, 이후 한국전 참전 터키 노병들에 대한 따뜻한 환대, 한국과 터키의 3,4위전 경기에서 한국 관중들이 터키 국기를 들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터키인들이 눈물을 흐렸다고 한다. 이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이 그들의 숙적 그리스를 2:0으로 깨는 것을 보고 자기들이 이긴 것처럼 열광했다고.

 

                                                        <방명록에 서명하는 모습>

 

 

 

터키의 영웅 아타 튀르크 기념관은 버스 안에서 스치고 지나간다. 그는 터키의 국부로 오늘날의 터키를 만든 영웅. 그의 초상화나 동상은 터키에서 국기나 나자르본죽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었다. 터키 동상의 90%가 그의 동상일 만큼 존경 받는 인물.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오스만투르크는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했고 아나톨리아마저 점령당한 상태.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케말 파샤. 그는 실지 회복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현재의 영토를 보전할 수 있었고, 공화정을 수립 초대 대통령이 된다. 앙카라로 수도를 이전하고, 종교, 교육 등 사회 전반적인 개혁을 통해 터키를 유럽식 근대국가로 만들었다. 그는 국민의 99%가 무슬림이지만 다른 이슬람권 국가와는 달리 정교분리 원칙을 고집, 이슬람교를 국교로 정하지 않았다.

 

 

이제 아나톨리아 고원 중앙부에 있는 카파도키아로 이동한다. 터키 여행에서 가장 기대가 되는 곳으로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 앙카라에서 305km 거리로 4시간 소요 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