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 신화 속 일리아드 영웅들의 자취는?
<8/10일, 수>
8월 5일 서울을 출발 했으니 오늘이 여행 6일차, 오늘은 고대 유적지 '트로이'를 보고 랍세키 부두에서 다르다넬즈 해협을 건너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간다. 여행도 이제 슬슬 종착점을 향해 가는 것. 워낙 바쁘게 움직이고 이동이 많다 보니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 기분. 이제 일행들과도 많이 익숙해졌다.
연세가 좀 드신 부부 두 팀, 이 분들은 젊은 사람 이상으로 활력이 넘친다. 깜짝 선물로 부모님이 여행을 보내줬다는 고1 남학생, 비싼 돈 들여 보내주신 부모님 생각해서 하나라도 더 보고 즐기겠다고 안달. 혼자 온 회사원 아가씨, 참 씩씩하다. 모녀간으로 오해 받았던 직장 동료 두 사람은 오징어젓갈까지 갖고 와 인심을 쓰고(고맙게도)
부부와 어린 딸 둘이 함께 온 한 가족, 세 모녀만 정답게 붙어 다니고 아빠만 왕따를 당한다. 집사람은 평소 딸이 없는 것을 아쉬워하던 내게 "딸 있는 것 부러워 마요, 저 집 보면 아빠만 왕따 당하고 있어". 이런 이래저래, 불쌍한 남자들......
<트로이 목마>
아침, 호머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에 나오는 영웅들의 세계를 찾아 '트로이'로 향한다. 현재 지명은 트루바. 신화 속의 도시로만 알려졌던 트로이. 그 트로이를 역사의 도시로 이끌어낸 장본인은 독일의 하인리히 슐리만.
그는 어릴 때 호머의 대서사시 ‘일리아드’를 읽고 트로이를 발견하겠다는 꿈을 갖게 된다. 그의 꿈은 현실이 되어 1870년~1873년 트로이를 발굴하는데 성공한다. 9,000점이나 되는 대량의 유물을 독일로 밀반출했고 1881년 드디어 트로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그는 꿈을 이룬 영웅인가, 보물에 눈이 어두운 약탈자에 불과한 것인가?
왼쪽은 에게해, 오른 쪽은 올리브 농장이 끝없이 펼쳐진다. 올리브는 터키에서 처음으로 재배가 시작되었다고. 2시간 반 걸려 유적지 트로이 도착. 유적지 입구, 실제 모습을 추정해서 만들었다는 거대한 목마가 내려다 보고 있다.
<목마 안에 들어가 볼 수 있게 만들었다>
트로이 전쟁은 여신들의 미모 경쟁이 초래한 10년간의 전쟁. 호머의 일리아드는 이 전쟁의 마지막 부분, 51일간을 다루고 있다. 트로이 왕자인 패리스는 여신들의 미모 콘테스트에서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주고 스파르타 메넬라오스 왕의 아내인 헬레네를 꼬셔 트로이로 돌아온다.
마누라를 뺏긴 메넬라오스는 노발대발, 형인 미케네왕 아가멤논을 부추겨 연합군을 결성, 트로이를 공격한다. 10년간이나 이어진 전쟁은 오딧세우스의 계략에 의해 종결. 커다란 목마 속에 숨겨둔 그리스 군의 습격으로 트로이는 멸망,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다.
하긴 트로이 프리아모스 왕의 사위인 아이네아스가 트로이를 탈출해 로마 근처의 해안에 정착, 그의 후손인 로물로스와 레무스가 로마를 건국했으니 로마로 다시 살아난 것인가?
<작은 박물관에서 공부를 좀 하고>
<유물로 한껏 치장한 슐리만 부인>
<출토 유물인 토기와 황토관>
<오데이온 - 로마시대 건축물>
<신전 터 - 누구의 신전일까? >
사각 제단이 있고, 앞 부분 제물을 닦았을 두 개의 우물이 보인다.
트로이 전쟁은 BC 12~13세기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 트로이는 9개 시대의 도시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층마다 다른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BC 3,000년경부터 도시가 건설되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트로이 유적은 6단층에 속한다고 한다. 지진 등으로 도시가 소실되면 그 위에 다른 도시가 건설 된 것. 지진이 심한 지역이라 그런 지각변동이 심했을 거고, 그래서 트로이가 신화 속으로 사라졌을 게다.
<성벽 도로를 따라>
보이는 숫자는 지층. 트로이 유적지는 9개의 지층이 있고, 지층마다 시대를 달리한 유적이 있다.
지진 등으로 도시가 없어지면 그 위에 다시 도시를 세운 것.
오랜 역사의 흔적들...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전망대>
오래된 유적들을 보면서 잠시 걸으니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곧 동북쪽 성채에 올라선다. 여기서는 영화 ‘트로이’의 그리스 영웅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결투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성밖 공터에서 두 사람은 결투를 벌이고, 이곳 성채에는 프리아모스 왕과 헬레네가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트로이 왕은 이 언덕에서 마차 뒤에 묶여 질질 끌려가는 아들의 시신을 보게 된다. 앞에 보이는 들판은 원래 바다였으나 지각변동으로 인해 평원으로 변했다고 한다.
<동북 방향 성채, 트로이 전쟁 당시는 앞에 보이는 벌판이 바다였다고>
<성벽이 보인다>
유적지를 돌아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작다. 아니 그 거대한 서사시의 배경이 이렇게 좁은 성? 당시 트로이 전사는 2천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당시 트로이 인구는 4천~8천명. 그러면 일리아드의 영웅들도 휘하에 몇 백 거느린 장수에 불과했던 것. 실제의 상황보다 부풀려진 영웅담. 거기다 그 정도 규모로 어찌 전쟁을 10년씩이나 할 수 있었을까? 공격하다 철수하고 다시 배 타고 가서 좀 싸우고, 그렇게 반복했었나 보다.
유적지 입구 기념품점에서 작은 목마 인형(15리라) 하나 사 들고 출발. 이제 랍세키부두에서 여객선을 타고 다르다넬즈 해협(터키명 차낙칼레 해협)을 건너 유럽 땅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
<무화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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