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기록/100대 명산 산행

[100대 명산] 남한산(南漢山) –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한 바퀴 돌기 (남문주차장 출발)

카페인1112 2021. 9. 12. 21:10

남한산 산행 - 걷기 편한 숲길,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따라 걷기

 

 

* 산행일: 2,02194(), 맑음

* 산행 경로 및 시간: 남한산성 남문주차장(7:08)~남문~수어장대~서문~북문~3암문~남한산 정상(9:10)~3암문~장경사~동문~남문~남문주차장(11:35)

  <총산행시간 4시간 27(휴식 등 1시간 포함, 널널산행)>

* 산행거리: 10.05km (18,455)

 

청량산 정상에 자리잡은 수어장대

 

  모처럼 지인과 함께 하는 산행인데 평소 산행과는 거리가 있는 분이니 오늘 산행은 여유 충만한 만만디 걸음. 게다 아침 일찍 시작했으니 서두를 일이 없다.

 

  오늘 산행은 세계문화유산(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남한산성 한 바퀴 도는 것. 남문주차장 출발해 남문~서문~북문~남한산정상~동문~남문 거쳐 주차장으로 돌아온다. 남한산은 산림청 100대 명산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나 월간산 선정 100대 명산.

 

 

 

  남문주차장에 주차(주말 주차료 5천원)하고 일행 기다리는 시간에 남한산성 행궁(사적 제480) 쪽으로 올라가 보니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1,626(인조 4) 완공된 남한산성 행궁은 인조 14년 청군의 침공으로 인조가 이곳에 피신 47일간 머물렀던 곳.

 

  행궁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불태워버린 걸 2002년이 되어서야 복원을 시작해 2014년 마무리한다. 그러고 보면 왜놈들이 임진왜란과 강점기 시절 파괴하고 약탈해 간 우리 문화유산이 엄청나네.

 

남한산성 행궁 방향

 

  1,636(인조14) 병자호란 때 청군 128천 병력(인조실록은 30)이 침공해 빠르게 남하해오자 인조와 세자는 도성을 비우고 피신하기로 결정한다. 정사는 무능했지만 도망가는 재주는 있었던 인조, 이괄군이 도성으로 쳐들어오자 공주 공산성으로, 정묘호란 때는 강화로 도망갔다. 병자호란 때에도 강화로 피신 하려 했으나 청군 남하가 빨라 길이 막히자 어쩔 수 없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게 된 것.

 

  남한산성으로 도망간 조선조정은 무기력한 모습만 노출하고 항전 47일만에, 아니 피난 47일만에 항복한다. 남한산성에 집결한 군사는 산성 방어에도 부족할 정도였고, 지방 근왕군 수 만명이 모였으나 이 오합지졸 군사들은 쌍령전투에서 청 기병 300명에게 대패하고 만다. 청 기병 돌격 한 번에 수 만명 조선군이 풍지박산 난 것. 거기다 청군들이 남한산성 행궁 방향으로 대포 몇 방 쏴버리니 인조와 그 잘난 사대부들은 기절초풍 만세를 부른다.

 

  당시 조선 국왕 인조는 청 태종 홍타이지(黃太極)에게 항복하기 위해 푸른 색 죄인 옷을 입고 백기 투항을 상징하는 백마를 타고 남한산성 정문이 아닌 서문을 나선다. 삼전나루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혹은 삼궤구고두)의 치욕적인 항복의식을 다하고 궁궐로 돌아갔고, 항복한 자리에는 훗날 홍타이지 공덕을 기리는 청태종 공덕비를 세우는데 그것이 바로삼전도비.

 

  조선 백성의 안위보다 재조지은 명과의 의리가 더 중요했던 조선 사대부들, 광해군의 실리외교를 버리고 반청노선을 걸었던 당시 집권층, 그들 무능했던 인조나 집권층들 치욕이야 당연한 거지만 사실 고통은 힘 없는 민초들의 몫.

  여진족들은 전쟁 목적이었던 약탈이 당연한 족속들. 일단 백성들을 노예로 끌고 가는데 혈안이 되었는데 그 때 노예로 요동에 끌려갔던 조선 백성이 60만명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다수는 애 잘 낳는다고 여진족들이 선호했던 조선 부녀자들. 민초들의 삶은 계속 비참했고, 한심했던 왕조와 당시 집권층들은 그 큰 과오에도  계속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그런 비참한 역사의 현장에서 오늘 산행을 시작한다.

 

남문(지화문), 서문 방향으로 진행

 

  남문주차장에서 남문으로 향한다. 남문(지화문)까지는 600m 정도 도로 따라 오르면 된다. 남한산성 동,,,북 4개의 대문 중에서,남문이 산성의 정문으로 가장 크고 웅장하다. 인조가 청군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신할 때 이 문을 이용해 성안으로 들어왔다.

 

산책로 따라 서문으로

 

  남문에서 서문 방향으로 진행. 성벽 길을 걷지 않고 걷기 편한 산책로 따라 오른다. 남문에서 30분 정도 걸으니 남한산성 주봉인 청량산 정상(497m)에 있는 지휘본부 수어장대. 잠시 수어장대 둘러보고 서문으로 간다.

 

 

서문으로 가는 길. 성벽 너머 서울시가지와 북한산 도봉산 라인이 그대로 펼쳐진다.

 

 

  서문, 인조가 삼전도 청군에게 항복할 때 나갔던 문. 청나라 홍타이지가 외곽 산봉우리에 올라 산성 내부를 들여다볼 정도였고 대포까지 쏴댔으니 공자왈 맹자왈만 알았던 조선 사대부 서인정권 실세들은 바짝 쫄았을 거고, 인조가 청태종에게 삼궤구고두례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마천역에서  오르면 이곳 서문으로 연결된다. 전에 자주 올랐던 코스

 

 

  날이 맑아 조망이 좋다. 북한 도봉산 수락산, 예봉 검단산이 보습을 드러낸다.

 

한강 너머 산너울, 우측에 예봉산
북한산 도봉산 라인 우측 불암 수락산이 보인다

 

  북문(전승문)은 수리중이라 그냥 통과.

 

  병자호란 당시 영의정 김류가 지휘하는 조선군 300여명이 이곳 북문을 열고 나가 청군과 전투를 치룬다. 그게 조선군이 성문을 나가 전투를 한 유일한 전투인데 당시 청군의 계략에 빠져 전멸.

  아니 십만 넘는 대군이 공격해 왔는데 300명으로 자살 공격.그리고 주딩이만 살았던 사대부 양반들은 다 빠지고 불쌍한 병사들만 유목민족 기병들 앞으로 내몰아 다 죽게 만들었다. 정말 웃기는 짬뽕 무능한 군주와 관료들이었다.

 

  하긴 지금인들 뭐 다를까?실력은 없이 구호에만 능하고 권력욕만 가득한 이들이 이 글로벌 시대 경쟁력에 어떤 도움이 될까? 

 

북문을 지난다

 

  벌봉으로 이어지는 제3암문. 벌봉이나 남한산 정상 가려면 이곳에서 3암문을 나가야 하는데, 성곽길 따라 걷다가는 무심코 그냥 통과하기 쉽다.

 

  여기서 일행 기다리며 한참 휴식. 암문은 일종의 비밀통로. 이곳 제3암문은 본성과 봉암성을 연결하는 통로로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 홍예문이고 다른 암문에 비해 규모가 크다. 이곳에서 이정표 벌봉 방향으로 암문을 통과해 봉암성으로 나가 남한산 정상으로 간다. 남한산 정상 갔다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동문 방향으로 갈 것.

 

제3암문을 나선다, 봉암성 방향으로 가는 길
등골나물

 

  지선성곽인 봉암성으로 들어선다. 봉암성은 벌바위성을 한자로 바꾸어 놓은 것. 봉암성은 동장대 부근에서 북동쪽 능선을 따라 쌓은 일종의 보조 성으로 병자호란을 겪고 난 조선 조정에서 남한산성을 보완하는 외곽 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쌓은 성.

  남한산성은 본성 외에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과 5개 옹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봉암성에 들어선다.

 

  봉암성에서 정상 가는 길. 봉암성은 본선성곽인 남한산성 성곽에 비해 아직 보수가 덜 되어 무너지고 퇴락한 모습.

벌봉 갈림길)한봉갈림길), 좌측으로 가면 벌봉 직진하면 한봉 가는 길.

 

  남한산 정상 가기 위해 한봉 방향으로 진행.

 

 

  바쁜 은줄표범나비 한쌍을 만난다.

 

 

  한봉 갈림길에서 잠시 걸으니 곧 남한산 정상석이 보인다. 남문주차장에서 5.7km, 2시간이나 걸렸다. (9,850이전 정상석은 조금 더 가서 성곽 위에 있었는데 성곽 보호를 위해 현재 위치에 정상석을 세운 것.

 

 

  정상석에서 벌봉으로 갈까 하다 그냥 제3암문으로 돌아나와 동문 방향으로 진행. 작년 왔을 때는 남한산 정상에서 벌봉 갔다가 다시 남한산성 내로 들어왔었다.

 

봉암성문 통과해 다시 남한산성 내부로 들어온다

 

  성벽 따르는 길과 숲길. 편한 숲길 따라 걸으니 장경사로 내려선다. 그런데 등산객들은 성벽 따라 걷는 사람들이 더 많네. 숲길이 그늘이라 더 좋은 것 같은데...

 

 

  남한산성 축성 당시 승려 각성이 8도 승군을 동원해 축성했고 성을 관리하고 승군을 주둔시키기 위해 9개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장경사만 당시 모습이 남아 있다고 한다.

 

  마당에 1995년에 세웠다는 89층석탑이 보인다. 저 탑은 고려시대 탑을 모방한 건가? 우리나라 탑의 조형미는 통일신라 시대가 절정기, 이후 조성된 탑들은 그 때 수준을 따라가지 못 한다. 현대는 그냥 짝퉁 저급한 모조품 시대.

 

장경사

 

  여긴 차를 갖고 올라와 절 구경 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장경사 입구 탁자에 앉아 간식으로 배를 채운다. 일행이 있으니 계란에 복숭아까지 호사를 누리네. 여기서 널널하게 쉬면서 거의 수다 삼매경.

 

  장경사에서 나와 다시 성벽으로 붙는다. 잠시 걸으면 동문(좌익문), 횡단보도 건너 남문방향으로 간다. 포장도로 따라 우측으로 가면 남문주차장이 나오는 것.

 

동문 지나 횡단보도 건너 남문으로 간다

 

  동문에서 남문 가는 길, 잠시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10암문 지나 남장대터에서 한참 쉬다 간다.

 

남장대 터

 

  남장대터 앞 제2남옹성치.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성벽을 돌출시켜 만든 옹성치. 여기서 보는 조망이 나름 시원하네. 옹성치 앞에 정상 군시설물이 있는 검단산이 가깝게 보인다.

 

옹성치 성벽 뒤에 보이는 검단산
물봉선이 한창이네

 

  성벽 너머로 관악산이 보인다. 남문 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계속 이어진다. 역시 주말의 남한산성답게 혼잡.

오늘은 그나마 산행 출발시간이 일러 비교적 혼잡하지 않게 걸을 수 있었다. 진입로도 주차장도 여유 있었고.

 

 

    내리막길 잠시 걸으면 남문. 남문에서 포장도로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와 오늘 산행 종료. 총 산행시간이 4시간 반 가깝게 걸렸는데 워낙 쉬는 시간이 많았고 널널하게 걸어 소요시간은 무의미.

 

남문에서 주차장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