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정맥 산행/한북정맥

한겨울의 수피령에서 하오고개까지(한북정맥 구간)

카페인1112 2006. 3. 4. 21:30

수피령은 아직 봄이 멀었나~, 수피령~하오고개

 

* 산행지: 수피령~복주산~하오고개(한북정맥 구간)
* 산행일자: 2006년 3월 4일(토), 흐림
* 산행 경로 및 시간: 수피령(8:15) – 복계산 갈림길(8:57) – 삼각점(참호 11:28) – 헬기장(종, 12:25, 중식 후 12:50 출발) – 임도(1:40) – 헬기장(2:15) – 복주산 정상(14:40) – 제2정상(15:10)  - 헬기장(15:50) – 하오고개(16:20) – 하오터널(16:50) – 신수리(17:10)

* 교통
 갈 때> 동서울터미널 와수리행(8,100원) – 와수리(7:45)에서 수피령(8:10)으로 택시 이용
 올 때> 하오터널에서 택시 이용 신수리(9,000원) – 신수리에서 동서울행 버스(7,300원, 5시40분차) 이용
       
  6시20분 와수리행 첫 차,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한북정맥 1구간을 타기 위해 길을 떠난다. 만만치 않은 산길, 게다 허리도 성치 않고 컨디션은 엉망, 금년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산행을 별로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홀로 산행을 떠난다.

  어둠이 걷히는 뿌연 창밖을 보며 산행을 떠나는 의미에 대해 자문해 본다. 잡념들을 훌훌 떨치고 자신있게 일어서자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따뜻한 폰 메시지의 여운이 마음 속에 스치며 오늘 산행에 대한 기대가 커지기 시작한다.


  일동을 지나면서 창 밖 풍경이 점점 겨울로 변해 간다. 산 응달 뿐 아니라 들판에도 하얀 눈이 그대로 쌓여 있고 고적하기만 한 야산도 한겨울 풍경이다. 봄 기운까지는 아니래도 겨울은 벗어난 모습일 걸로 기대했는데 이러다간 심설산행이 될까?


  1시간 반만에 낯선 와수리에 도착, 생수를 준비하고 근처에 있는 택시에 승차하여 한북정택 들머리인 수피령으로 향한다. 수피령으로 가면서 보는 산에는 지난 월요일 내린 눈이 잔뜩 쌓여있고 친절한 운전기사는 산에 혼자 가냐며 걱정이 태산이다.

 

  8시10분 수피령(789m, 화천군 상서면과 철원군 근남면의 경계)에 도착하여 대성산지구 전전비를 잠시 둘러 보고는 전적비 뒷편에서 가파른 절개지를 힘들게 오른다. 심하게 쌓인 눈으로 미끄러워 오르기가 힘들다. 양지쪽 등로는 따뜻한 봄 날씨로 눈이 녹아 빙판이 되었고 그 위에 다시 눈이 쌓여 산 사면을 타고 오르면서 죽죽 미끄러진다. 몇 번 미끄러지고 나서야 아이젠 착용. 눈이 온 후에도 다녀간 사람이 있는지 몇 개의 발자국이 앞장서 있다.

 

  한달 뒤면 야생화 천지가 될 숲은 온통 눈 천지. 철새들이 지나가면서 우는 소리만 고요한 숲을 울린다.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며 눈은 점점 더 많아지고 뒤쪽 대성산 풍경이 시야에 가득찬다.

 

                               <들머리 대성산지국 전적비 - 능선으로 올라가다 내려다 본 풍경>


 

  첫 봉우리(촛대봉, 1010m)를 우회해 가기 때문에 처음 진행은 계속 우측으로 진행. 가파른 오름을 오르고 나니 눈이 가득 덮인 헬기장,  아마 우측 길로 가면 복계산 가는 길일 게다. 우측에 높은 봉우리가 솟아 있고 좌측 봉우리를 우회하는 등로엔 표지기가 잔뜩 붙어 있다.

  북서쪽 응달이어서일까 눈은 발목이 빠질 정도다. 조금 더 진행하니 갑자기 앞서가던 발자국이 사라지고 만다. 아마 여기가지 올라오고 나서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간 것 같다. 러셀이 되어 있지 않은 눈길 덕분에 스패츠를 착용하고 진행 그런데 발목 이상 푹푹 빠지는 미끄러운 눈길 게다 등로가 어디인지 분간이 힘들고 가파른 사면을 가로질러 올라가니 힘은 힘대로 들고 우측 낭떠러지로 미끄러질까 불안하기까지 하다. 가는 로프에 의지해서 계곡 급사면 내림길을 내려가면서도 너무 미끄러워 조심조심 초반부터 체력소모가 극심하다.

  눈길엔 사람 흔적은 전혀 없고 어른 주먹만한 동물 발자국만 등로를 따라가고 있다. 체력적인 부담에 등로까지 분명하지 않고 동물 발자국까지 이래저래 오늘 산행은 가혹한 일정이 될 것 같은 예감. 그래도 이따금 나타나는 선답자들의 빛 바랜 표지기가 길을 잃지 않게 해 준다. 
 

  9시반이 거의 다 되어서야 주능선에 올라타고 앞으로 가야할 마루금이 멀리 광덕산까지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제서야 조금 전 보았던 표지기의 ‘우리는 지금 가장 행복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라는 글이 실감이 난다. 20분쯤 더 가니 헬기장 앞에 거대한 암봉(930m)이 있다.

  계속 봉우리를 우회하는 길, 워낙 미끄러워 암릉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고 해도 우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능선은 주로 암릉지대로 되어 있어 능선 옆 사면을 타고 진행하는데 오른쪽은 경사가 급한 산 사면이다. 미끄러지면 아래로 그대로 곤두박질할 수 밖에 없는 위험한 길.

 

                                <앞으로 가야 할 방향>


  11시28분 943봉(삼각점 주위 반공호)에 도착. 삼각점이 있고 천막으로 덮여진 참호가 있다. 헬기장에서 내려오다 봉우리 옆에서 휴식. 이제부터 완만한 내리막이 잠시 이어지고 바람은 차갑게 부는데 눈은 더 많이 쌓여 있다. 휴식을 너무 오래해서 일까 금새 몸이 얼어 버린다.

  등로 주변에 소나무는 거의 볼 수 없고 참나무 단풍나무 갚은 활엽수 그리고 진달래 나무가 많아 봄철 그림같은 풍경을 자아낼 게다.

 

 

                                   <눈 쌓인 등로>

 


  12시25분 벙커가 있는 봉우리로 올라가니 화생방 표지판과 녹슨 탄피가 있는 헬기장이다. 깃발 없는 깃대만 서 있고 주변 조망이 후련하다. 온통 회색빛으로 꿈틀대는 산줄기들이 가슴을 후련하게 하고 다시 힘을 솟게 한다. 헬기장에서 여유있는 점심. 컵라면에 빵 한조각 그리고 충분한 휴식.


  러셀이 되어 있지 않은 두터운 눈 덕분에 진행 속도가 너무 느려 오늘 광덕고개까지 가기는 어려울 것 같고 하오고개에서 하산해야 할 것 같은 예감. 여기까지 오는데 4시간이나 걸렸으니 시간이 너무 지연된다.

  다른 사람들 산행 기록을 보면 여기까지 2시간 반 조금 더 걸렸던 것으로 보아 오늘 내 속도가 무척 느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벌써 다리가 피곤해질 정도로 체력 소모가 컸고 밤에 홀로 위험한 산길을 가기는 부담스럽다.


  이제부터 진행은 올라온 방향에서 좌측으로 붙어 있는 표지기를 따라 급경사 내리막길을 간다. 내리막 후 잠시 평탄한 길 그리곤 다시 오름길, 능선을 따라 가는 길인데도 오르내림이 심해 체력소모가 크다. 여전히 눈이 많이 쌓여 있고 바람의 심술 탓일까 어느 곳은 거의 무릎까지 눈이 올라온다. 눈 오기 전에 다녀간 선답자들의 흔적이 조금씩 남아 있고 빛바랜 표지기들이 등로를 안내한다. 아마 표지기가 없었으면 아예 산행이 불가능했을 것 같다.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니 폐타이어로 만든 급경사길인데 주변엔 온통 반공호다. 임도가 있는 실내고개 갈림길(1070m봉). 봉에 오르진 않고 우측 임도를 따라 진행. 곧 우측에 산길이 나오지만 무시(어짜피 다시 합류된다)하고 계속 임도를 따른다. 그런데 갑자기 앞서가는 발자국 하나. 임도 시작되는 지점에 실내고개에서 올라오는 등로가 있을 테니 그 쪽에서 올라온 사람 발자국일 게다.

 

  임도는 15분 정도 소요된다는데 눈이 많이 쌓여서일까 35분이나 걸려 임도 끝 부분 작은 헬기장이 있는 지점에 도착했고 등로는 이제부터 산길로 접어 든다. 복주산 정상이 가까워진 것.

  앞서 가던 사람이 임도 끝까지 갔다가 그냥 하산한다며 돌아서는 모습이 보인다. 오늘 산행에서 유일하게 마주친 사람. 실내고개에서 올라와 복주산에는 가지 않는 짧은 산행을 하고 하산하는가 보다.


  헬기장에서 복주산으로 향하는 길엔 눈이 더 많고 가파른 오름, 복주산으로 오라가는 등로는 너무 미끄러워 힘들고 네 발을 다 써야 하는 상황이다. 복주산 정상에는 삼각점과 헬기장, 그리고 반 토막 정상석만 놓여 잇다. 잠시 앞으로 가야 할 한북정맥 산줄기들을 조망하고 서둘러 가파른 내리막을 거쳐 암봉을 기어오른 다음 다시 내려가 앞에 보이는 높다란 암봉의 미끄러운 날등을 올라간다. 암봉에는 다시 반토막 정상석, 그런데 고도계를 보니 아까 정상보다 거의 10m 정도 높을 것 같다.

 

        

                                 <복주산 첫번째 정상 - 반토막 정상석>

 

 

    

                               <두 번째 정상인데 요기가 정상이 맞을 것 같다>


 

  조금 더 내려오니 바위 사이 가파른 내림길, 굵은 로프가 매여 있어 로프를 잡고 내려오다 눈 밑 빙판길에 죽 미끄려져 내린다. 바닥 눈을 헤치고 보니 완전 빙판길이다. 팔 힘에 의존하며 내려온다. 곧 다시 급경사 오르막길이 있는데 빙판길이 미끄러워 도저히 등로로는 올라갈 수가 없고 우측 비탈도 어렵다.

  좌측 작은 관목들 사이로 간신히 우회하면서 올라선다. 한참을 더 진행하니 헬기장(1030봉), 이제부터 하오고개까지 본격적인 하산길이 이어질 게다.


  하산길 능선에는 암봉들이 많아서인지 능선을 따르지 않고 산사면을 타고 가게되어 잇다. 고도를 빠르게 낮춰 가는지 계속되는 미끄러운 급경사길엔 사람 흔적이 없고 한겨울 분위기의 숲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다. 길이 워낙 위험해 조심조심 긴장을 하고 진행. 거기다  짐승 발자국은 왜 이리 자주 나타나는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점점 더 급한 경사길이 나타나고 곧 하오고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오고개로 내려서는 길은 폐타이어를 이용해 길을 닦아 놓았고 16시20분 하오고개에 내려선다.

  이제는 신수리 택시를 불러 돌아가는 일만 남았는데 고개 임도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가 없다. 택시회사에 전화해서 물어 보니 자기들도 모른다면서 하오터널로 내려와서 전화 하란다. 일단 신수리 방향을 생각해서 우측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주변에는 온통 군 시설물, 북한군 모습이 있질 않나 아마 이 임도는 군사용으로 주로 쓰이는 것 같다.

 

  미끄러운 임도를 20분 정도 걸려 내려가니 하오터널이 보인다. 4시50분 터널 도착. 조금 후 도착한 택시를 타고 10분 조금 더 걸려 신수리 도착, 5시40분 동서울 버스를 타고 귀가


  눈이 너무 많이 쌓이고 등로가 불분명해 악전고투했던 하루, 그래도 눈은 실컷 밟아 봤고 광덕고개까지 가지 못한 아쉬움과 미련이 크지만 그동안 가고 싶었던 산행지였기 때문에 밀린 숙제를 반은 했다는 것으로 자위해야 할까. 다음엔 하오고개부터 광덕고개까지의 길 (도상거리 12.5km의 짧은 거리)

 

  * 신수리 택시회사 033-458-3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