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에 솟은 천상의 꽃 - 설악산 공룡능선
* 산행지: 설악산(1,708m)
* 산행일:
* 산행 경로 및 시간: 오색(
총 산행시간: 12시간(휴식 및 중식
산행거리: 오색~대청봉(5km)~중청휴게소(0.6)~소청(0.6km)~희운각(1.3km)~1275봉(3km)~마등령(2.1km)~비선대(3.7km)~설악동(3km), 총 19.3km
* 교통: 한화설악리조트~오색(택시 4만), 설악동~한화리조트(1만)
새벽까지 빗소리가 그치지 않아 오늘 산에 갈 수 있을까 뒤척이다
설악산은 남한에서 한라산(1,950m)과 지리산(1,915m) 다음으로 높은데다 오늘 가려는 코스는 거의 20Km 가까운 거리. 공룡능선만도 7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야 하는 5km의 만만치 않은 길, 하지만 환상적인 능선 종주가 되리라.
<설악폭포>
길이 조금씩 순해지면서 요란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설악폭포가 가까워지고 있다. 우측으로 폭포의 하얀 포말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폭포 쉼터에서 잠시 쉬다가 급경사 바위를 오른다. 5분쯤 오르니 급경사 계단길이 나타나는데 주변 전나무와 울창한 활엽수들이 싱그럽다. 계속 이어지는 계단길. 곧 능선으로 올라서고 좌측 산허리에 운무들이 몰려오고 있다. 뒤쪽 점봉산 방향도 온통 운무로 뒤덮여 산을 분간할 수 없다. 조금 더 올라가 2쉼터에서 10분 휴식. 이제 대청은 얼마 남지 않았다.
<대청봉 오름길의 고사목 - 뒷편 점봉산 쪽은 운무로 덮여 있다>
대청봉이 가까워지면서 주변은 온통 산상 화원, 흐린 날씨 속에 들꽃들만 환하게 빛나고 있다. 모싯대, 여로, 희여로, 원추리, 어수리, 동자꽃, 송이풀, 흰송이풀, 산오이풀, 등대시호, 흰장구채, 짚신나물, 저 작은 앙증맞은 꽃은 네귀쓴풀일게다. 들꽃들의 화려한 향연에 발길은 계속 지체된다.
작년 여름 이후 1년 만에 다시 오른 대청봉. 날이 너무 흐려 가까운 산줄기들만 흐릿하게 보일 뿐이고 차가운 바람이 거세게 분다. 날씨가 더워서일까 등산객들도 많지 않다. 찬 바람을 맞으며 온통 구름에 싸인 주변 산들을 보며 한참을 쉬어 간다. 시간이 정지된 듯 거센 바람 속에서 난 거칠 것 없는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된다.
<대청봉 이정표>
<구름이 몰려오는데....
<대청에서 보는 중청, 옅은 구름이 조금씩>
여유 있는 휴식과 꽃구경에 시간은 자꾸 가는데 오늘 공룡능선을 가려면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 대청에서 중청휴게소로 내려가는 길. 이제부터는 고운 바람꽃과 산오이풀의 성찬이다. 거센 바람에 몸을 맡겨 애처로운 바람꽃의 꽃말이 왜 허무한 사랑일까? 지금이 제철인지 탐스러운 바람꽃은 공룡능선까지 계속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 산행 내내 기쁨을 주었다. 거기에 귀한 금강초롱까지 피기 시작한다. 작년 여름 빗속에 만난 저 금강초롱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던가? 주변 꽃들을 구경하느라 15분이면 내려갈 중청휴게소까지 25분이 걸렸다.
중청대피소로 내려오니 주변은 완전히 운무에 덮여 대피소는 한 점 섬이 되었다. 대피소에서 보는 풍광이 그림같이 아름다운 곳인데 오늘은 아쉽게도 사방이 모두 구름 속에 잠겨 조망은 제로. 단체등산객들이 몇 팀이나 있어 떠들석하다. 빵 한 조각으로 요기를 하고 소청 방향으로 출발한다.
<중청대피소에서 소청가는 길 - 구름> <끝청갈림길 - 소청방향으로>
소청으로 가는 길은 안개 속의 산책. 안내판에 귀떼기청봉과 천불동 계곡 안내를 하고 있지만 운무에 덮인 설악은 그 기품있는 자태를 아직 보여주지 않고 있다. 주변 동자꽃, 미역줄나무, 산오이풀 같은 들꽃들을 보면서 발길을 재촉한다.
<소청 갈림길 이정표>
중청대피소에서 15분 정도 걸려 소청갈림길 도착(대청봉 1.2km, 중청대피소 0.6km, 희운각 1.3km). 좌측으로는 소청휴게소를 거쳐 봉정암, 백담사로 내려 가는 길. 재작년 가을 저 길을 가며 그 아름다운 가을 풍경에 황홀했던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린다. 어리석은 마음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줬던 부끄러움도 같이. 지난 날 부끄러웠던 순간들은 왜 그리 오래 기억에 남는지……
희운각으로 향하는 길은 우측의 급경사 내리막이다. 향이 좋은 꽃향유가 한창이고 저 보라색 작은 꽃은 오리방풀일게다. 조금 더 내려가니 날이 조금씩 개면서 수려한 설악의 속살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 걷게 되는 신선대의 수려한 풍경이 펼쳐지고 그 좌측으로 공룡의 줄기들이 장쾌하게 뻗어 있다.
등산로 바로 옆에서 짐승의 콧김 뿜는 소리가 크게 나더니 바로 산사면을 후다닥 뛰어 내려가는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아마 멧돼지가 등로 옆에서 놀다가 내가 지나가는 바람에 놀래 도망가는 것인가 보다. 덕분에 나까지 놀랬다 이 녀석아, 콧김 뿜는 소리가 그리 요란하나..
<소청에서 희운각 가는 길에 미리 보는 공룡능선>
<신선대와 그 뒤로 보이는 울산바위>
희운각으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 계단길. 작년 여름에는 없었던 계곡을 가르는 나무 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를 건너 계곡으로 내려가 수통 물을 바꾸고 즐거운 구름이란 멋진 이름의 희운각대피소에 도착. 시간이 이르지만 점심을 먹기로 한다. 작년에는 컵라면을 팔지 않더니 이번에는 팔고 있어 컵라면을 하나 사 준비해 간 도시락과 같이 먹는다. 여유 있게 볼 일도 보고 옆자리 아가씨가 권하는 커피도 얻어 마시고 한참을 쉬어 간다.
이제 공룡능선으로 향하는 길. 공룡능선과 천불동계곡이 갈라지는 무너미고개는 200m 거리로 지척이다. 무너미고개는 물을 넘어가는 고개라는 뜻일텐데 어느 물을 말하는 것일까? 무너미고개에 도착하니 공룡능선은 공사 중이니 등산을 자제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공룡능선은 내설악과 외설악의 경계를 이루고 수려한 화강암 봉우리들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5.1km의 거리. 오늘 처음 가는 길이다.
<무너미고개 이정표 - 우측길은 천불동계곡, 좌측길이 공룡능선>
걷기 좋은 평탄한 길이 잠시 이어지는데 주변에 새며느리밥풀꽃과 여린 모습의 솔나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며느리밥풀꽃과 솔나리는 오늘 공룡능선 내내 같이 산행을 하며 기쁨을 주었다. 솔나리가 저리 아름다웠던가!
길은 계곡으로 깊게 내려갔다 다시 오름길로 변하는데 곧 가파른 암릉길이 나타난다. 암릉지대 로프를 잡고 오르니
<신선봉 이정표>
<신선봉 - 바위 모양이 왜 이래>
신선봉에서 보는 조망이야말로 일품. 대청 중청은 산머리에 흰구름에 둘러 쌓여 있고 용아장성은 구름 때문에 볼 수가 없다. 앞으로 가야 할 공룡능선이 흐리게 끝없이 이어져 있는데 신선봉에서 보는 공룡 조망이야말로 절경이고 설악의 진수. 천화대라는 표현처럼 푸른 수림 속에 솟은 기암기석들의 모습이 천상의 꽃이다. 앞에 범봉과 천화대 그 다음 뾰족하게 솟은 1275봉, 그 뒤로 마등령이 보이고 그 뒤 흐릿하게 황철봉까지 보인다.
<신선봉에서 보는 대청과 중청 - 대청은 구름에 덮여 있다>
<범봉과 천상의 꽃 '천화대'>
<1275봉(좌측) 뒤로 마등령이, 그 뒤로 황철봉이 흐릿하게 보인다>
<공룡능선의 대표선수 1275봉 - 애국가 배경 화면으로 나왔다고>
<멀리 울산바위가 흐릿하게>
신선봉에서 쉬다가 그 예쁜 솔나리들의 영접을 받으며 다시 길을 떠난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다시 급경사 길을 오르고 만만치 않은 길이다. 오르내림의 반복. 그리고 거대한 암벽들을 우측에 두고 가는 길. 거대한 암벽과 푸른 수림의 조화 속을 걷는다. (
샘터
(마등령 2.3km)를 지나 거대한 암벽 옆길이 이어지고 이제는 암반지대 급경사 길을 오른다. 경사가 급하지만 그리 미끄럽지 않아 오르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데 눈이 올 경우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안부에 다달을 즈음 피어 있는 보라색 병조희풀은 올해 처음 본다. 신선봉에서 1시간 이상 걸려1275봉 도착. 이정표는 희운각 3.0km, 마등령2.1km. 이정표에 양각봉이라고 쓰여 있는데 양쪽으로 뿔처럼 바위가 높이 솟아 있으니 1275봉의 모습과 걸맞는 것 같다.
<1275봉 안부 이정표>
<1275봉>
<앞으로 가야 할 나한봉 방향>
<암벽 좌측 길로>
거대한
암벽 사이로 난 안부에 올라 사방으로 펼쳐지는 장관에 넋을 잃는다. 좌측 코끼리형상의 바위 등 기암기석들로 신비롭기까지 하다. 우측 1275봉을 오르려고 등로를 살피는데 갑자기 찬 바람이 세게 불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마음이 급해 봉우리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출발. 바람꽃은 여전히 주변에 무리 지어 피어있고 처음 보는 보라색 솔체꽃이 아름답다.그런데 이제부터는 시간이 늦어서인지 산객들이 거의 보이지 않고 숲은 고요하기만 하다. 거대한 성벽처럼 직벽이 솟아 있어 로프를 잡고 오르니 다시 직벽 내리막 그리고 다시 급한 오름길. 봉우리에 오르니 연세가 지긋하신 단체산행객들이 쉬고 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주변을 조망하면서 한참 쉬어 간다. 1275봉에 구름들이 몰려오고 있다. 잠시 내려갔다 다시 급경사길을 오르니 우측으로는 아찔한 수십 미터 절벽인데 바로 발 아래 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마등령 1.1km 표지판과 안부를 지나 20분 정도 더 가니 나한봉. 이제 마등령은 0.5km 남았다. 구름이 더 몰려들고 있고 시간이 예상보다 지체되어 발길이 급해진다.
<나한봉>
나한봉을 조금 지나 노란 바위채송화가 아름다운 너덜 길에서 잠시 쉬면서 가야 할 마등령을 본다. 이제부터 너덜길이 그래도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곧 마등령 갈림길 도착. 앞에 단체산행객들은 서로 공룡능선을 통과한 축하와 격려인사로 요란하다. 하긴 공룡능선 무사 통과에 대한 뿌듯함이 왜 없겠는가? 단체등산객들은 오세암 방향 좌측 길로 내려가고 난 혼자 우측 비선대 방향으로 향한다. 홀로 가는 길, 그것은 우리네 삶이 그러하니 외롭다고 느낄 필요가 없다.
우측 길로 접어드니 다시 동자꽃이 군락지를 이룬 환상적인 산상화원의 세계, 잠시 꽃 구경을 하며 머무른다.
<마등령 갈림길 이정표>
<동자꽃 군락지>
급경사길을 10분 정도 더 가니 1320m의 마등령 정상. 좌측에 미시령 가는 길은 통제구역, 비선대까지는 3.5km(3시간10분), 비선대에서 설악동까지는 3.0km(50분 소요)로 안내되어 있다. 우측 철계단길을 내려 비선대로 향한다. 슬슬 다리가 아파오는데 하산길도 경사가 급하고 오르내림의 반복. 더구나 길은 돌길이라 발에 부담이 크다. 전망대에서 보는 장쾌한 전망도 일품. 짙은 구름 사이로 범봉과 뾰족한 화채봉의 수려한 풍광을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어 잠시 쉬어 간다. 하산길 내내 펼쳐지는 설악의 수려한 풍광이 계속 발목을 잡는다.
<천화대와 뒤로 뵤족한 화채봉>
샘터(비선대 2.5km)를 지나 멋진 전나무가 있는 암릉지대도 지나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비선대가 가까워지면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등로는 우측으로 꺾여 급경사 돌길로 이어진다. 좌측에는 금강굴이 있는 거대한 암벽 미륵봉(장군봉)이다. 암벽을 릿지로 내려오는 사람 모습이 보인다. 금강굴 갈림길을 거쳐 비선대 도착. 비선대는 와선대에 누워 있던 마고선이 하늘로 날아 올라가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넓은 바위 암반 위에 수정같이 맑은 계류가 흐르고 주변 수려한 기암기석은 언제 보아도 절경이다.
<비선대의 미륵봉(장군봉)>
<비선대>
이제부터
설악동까지 가는 길. 몸이 만근인지 피곤해 걷기가 엄청 부담스럽다. 신흥사 대불 앞에 잠시 합장하고 설악동에 도착. 노산 설 악 산 (노산
설악산이여.
이 밤만 자면 나는 당신을 떠나야 합니다
당신의 품속을 벗어나 티끌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마지막 애달픈 맹세와 기원을 드립니다.
설악산이여.
내가 여기와 흐르는 물 마셔 피가 되었고
푸성귀 먹어 살과 뼈가 되고
향기론 바람 내 호흡이 되어
이제는 내가 당신이요 당신이 나인걸 믿고 갑니다.
설악산이여.
내가 살아가는 동안 무슨 슬픔이 또 있으리이까
아픔이 있고 외로움이 있고
통분할 일이 겹칠 적이면 사랑의 세례를 받으러
당신을 찾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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