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기록/산행기(지방)

은빛 파도의 억새 물결 - 정선 민둥산

카페인1112 2003. 10. 15. 23:00

은빛 파도의 억새 물결 - 정선 민둥산

 

 

산행지 민둥산(1,119m)

산행일: 2003 10 11일(토) 맑음

 

 

태백 정선 지역의 출장 자체가 가을 빛 고운 자태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는 회사 직원들과의 정선 민둥산 산행. 좋은 시절과 사람 인연이다. 푸근한 시골 정을 마음껏 느끼며 산행에 나선다. 민둥산은 억새 산행지로 가장 많이 알려진 곳, 그 기대만큼 민둥산은 경이로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 것인가?

 

아침 식사를 하고 8시40 민둥산으로 출발했다. 오늘의 등산인원은 모두 8, 오랜만에 많은 인원과 산행을 한다. 9 조금 지나 화암약수에 차 1대를 주차 시키고, 발구덕마을로 향했다. 9시40 발구덕마을에 도착, 커피 한잔 마시고 50분에 산행을 시작한다. 아침 출발시간이 늦어 증산초교 앞에서 등산하려던 계획을 바꿔 발구덕마을로 계획을 바꿨다. 마을 진입로에서 발구덕까지는 비포장 좁은 길로 아래 위 차량 교행이 힘들 정도로 좁은 길. 정상적이라면 증산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해발 800m의 발구덕마을에서는 정상까지 30분이면 도달할 수 있으니까 1시간 정도 시간을 단축하는 셈이다. 정상에 올랐다가 지억산을 거쳐 화암약수 쪽으로 하산할 계획이다.

 

민둥산은 돌리네가 발달한 카르스트 지형이라고 한다. 돌리네는 구덩이라는 뜻, 주변에 12개의 돌리네가 발달되어 있고, 발구덕도 원래는 팔구덕으로 8개의 구덩이라는 의미다. 정상 주변은 나무가 전혀 없이 수십만 평 주 능선 일원이 온통 억새 밭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어 가을철 억새 산행지로 유명한 곳. 전설은 하늘에서 주인을 찾아 내려온 용마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울부짖으며 산을 파헤쳐 그 이후 정상 주변에 나무가 자라지 못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매년 산나물 채취를 위해 산에 불을 질러서라고 한다.

 

등산로 입구는 고랭지 채소밭으로 한적한 시골마을을 연상시키고 밑에서 보는 민둥산 정경은 동네 조그만 야산 같은 기분이다. 주변 야생화들과 수확 후의 채소밭, 그리고 시든 풀잎들, 초입 가을 길의 정취는 엉뚱한 상념이 필요 없이 마음이 한없이 평화롭다.

 

산행 초입은 오르는 길의 경사가 무척 급하다. 급하게 서둘러 빨리 오르는 사람을 따르면 결국 자기만 지치는 것, 인생이 그렇듯이 내 페이스대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경사진 길을 잠시 오르면 억새 밭으로 주변은 온통 은빛 파도가 넘실대는 듯 억새 물결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30분 못되어 정상에 도착 주변의 시원한 경관을 마음껏 즐긴다. 정상 표지판은 1118,8m, 산의 높이에 비해 정상에 도달하는 시간이 너무 싱겁다. 정상에는 산불 감시초소와 정산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오늘의 목적지인 화암약수까지는 140분 소요.

 

정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은빛 억새 숲은 끝없는 광야처럼 신비롭기까지 하다. 특히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은 더 아름답다. 이 은빛 물결들은 석양빛을 받으면 다시 금빛으로 출렁이리라. 정상에서 화암약수 방향으로 나가는 길은 한길이 넘는 억새 터널을 가로질러 간다. 거기다 이따금 보라색의 곤도레라는 귀여운 가시엉겅퀴 꽃이 피어 있다. 정선아리랑에도 나온다는 곤도레는 처음 보는 꽃, 가시엉겅퀴라는 이름대로 잎에 가시가 있다. 옛날 먹을 것이 부족했을 때 이 나물은 기근을 면하게 해 주는 소중한 나물이었는데 지금은 곤도레 비빔밥이 독특한 맛으로 정선지역 별미음식이 되고 있다. 몇 군데 시든 용담 발견, 활짝 핀 모습이 그립다. 갈대 숲을 지나 계속 능선을 밟으며 화암약수 방향으로 진행.

 

능선에는 참나무, 잣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11시30 제동입구에 도착, 쑥대밭과 억새 숲을 지나 계속 능선으로 산행을 계속한다. 곧 이깔나무 숲을 지나 내리막길, 그리고 다시 능선 길. 이런 길의 반복이고 등산로가 밋밋한 편이다. 처음 오는 산인데다 민둥산에서 멀어질수록 표지판까지 제대로 없어 등산코스가 맞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거기다 조금씩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은 빛이 선명하지 못한데다 여기저기 시든 모습이 많아 단풍의 고운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지난 주의 화려한 오대산 단풍과 비교되니 민둥산의 단풍은 초라하기까지 하다.

 

도중 임도를 만났으나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 수도 없고 지억산을 찾을 수도 없다. 도로 가에서 점심을 먹은 후 그냥 아래 방향으로 하산, 결국 지억산은 오르지 못하고 화암약수로 나와 버렸다. 그래도 길을 헤매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도중 고랭지 채소밭에서 배추 한 포기를 얻고 계속 하산.

 

135, 산행을 마치면서 2차선 도로로 내려서 보니 민둥산 정상까지 12Km라는 표지가 있다. 우측에 불암사가 보이고 잠시 들렀다가 화암약수로 내려 왔다. 불암사는 그저 평범한 절. 도로로 나오기 전 등산로에 새끼 뱀 두 마리가 죽어 있다. 타살이냐, 자살이냐 농담을 하며 하산.

 

발구덕에 주차 시킨 차를 갖고 와 3 넘어 서울로 출발, 집에 도착하니 8 넘었다. 민둥산의 억새산행은 기대보다는 못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여유롭고 그 찬란한 억새 숲의 장관은 그 친절했던 정선 분들의 모습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에 남으리라.